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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07. 2021

"아버지처럼 살아라" 말할수 있는 세상이 되길...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48

사진을 찍으러 전통시장이며 오래된 가게, 무형문화재에 준하는 장인 등을 찾아 돌아다니다 보면

연세가 지긋한 어르신들을 종종 만나뵙게 된다.

그럴 때면 나는 습관적으로 그분들의 연세며 몇 년이나 그 일을 하셨는지 여쭙곤 하는데,

짧게는 2~30년, 많게는 6~70년씩 하신 분들이 허다해 놀라곤 한다.


평생직장은 언감생심이요, 10~20년씩 한 직장에 꾸준히 다니는 것도 쉽지 않은 시대에

어지간한 사람에겐 거의 한 평생이나 다름없는 6~70년을 한 가지 일에 몸담아 왔다는 건

우리 같은 범인들 입장에선 실로 경이적이면서도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경우는 좀 다르지만 2~3대씩 가업을 이어오고 있는 분들도 나를 놀라게 하긴 마찬가지다.  

그 중에는 달리 배운 게 없어서 호구지책으로 그 일을 해오고 있는 분들도 있지만

대대로 이어내려온 귀한 기술이 사장되는 게 안타까워 가시밭길을 자처한 분들 또한 적지 않은데,

100년 이상 된 장수기업이 거의 없는 우리나라에선 정말 귀한 존재들이 아닐 수 없다.


별로 비교하거나 본을 받고 싶은 생각은 없지만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장수기업들을 보유하고 있는 나라로 정평이 나 있는 것과 비교하면 특히 더 그런 생각이 든다.

전 세계적으로 7천여 개에 불과한 200년 이상 장수기업 중 4천여 개를 보유하고 있다든가,

창업한 지 1천년이 넘는 초장수기업도 무려 8개나 보유하고 있다는 걸 듣고는

잠시나마 일본이라는 나라가 예전 잘 모를 때와는 살금 다르게 보이기도 했었다.


일본이 이렇게 천년 기업을 키워오는 동안 사농공상이라는 어리석기 그지없는 신분제도를 만들어

기술자와 상인 등 국가 발전의 동량이 될 싹이란 싹들은 그 뿌리부터 댕강 잘라버리는가 하면,  

근현대 들어서까지 그 못된 버릇을 버리지 못해 화이트칼라 선호 풍토나 만들어 놓은 몹쓸 이 땅에서   

누구의 존경이나 인정도 받지 못한 채 외롭게 몇 십 년을, 혹은 몇 대를 묵묵히 살아들 오셨으니

힘들기는 또 얼마나 힘드셨을까.



아버지가 자식들에게 가업을 자랑스럽게, 흐뭇한 마음으로 물려줄 수 있는 나라가 됐으면 좋겠다.

'너는 이 아버지처럼 살지 말거라' 하는 열패감이 묻어나는 당부 대신에

'할아버지나 아버지 이름에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가업을 잘 잇거라' 하는 자존감 넘치는 유지를

자식들에게 남길 수 있는 아버지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언젠가는 우리나라도 100년 기업, 천년기업이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뿌리를 내려  

열심히 땀흘려 일하는 아버지들이 존경 받고 잘 사는 나라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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