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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30. 2021

아버지들 단골집은 모두 맛집이었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아버지 이야기 #46

요즘 세대들은 방송이나 인터넷 블로그를 보고 맛집을 찾아 다니지만

우리 아버지 세대는 대개 동네 단골집 한두 곳을 정해놓곤 죽어라 그곳만 찾으셨다.


그런 집들은 대개 실내 인테리어라는 개념이라곤 아예 없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메뉴판과 달력 정도만 덩그러니 걸려 있는 휑한 벽들이 사방을 채우기 일쑤였다.

식탁도 폐드럼통 같은 걸 재활용해서 튼튼하고 경제적일진 몰라도 멋스러움과는 거리가 멀었고,      

조리도구도 값비싼 가스렌지 대신 탁자 한가운데 연탄 화로를 배치하는게 고작이었다.


값 비싸고 화려한 인테리어가 넘쳐나는 요즘 음식점들과 비교하면

우리 아버지 세대의 단골집들은 일견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먹는 음식들은 하나같이 맛있었고,

그리 비싸지 않은 음식값에도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성찬이었다.


아마도 그 이유는 단골들 개개인을 알아주는 맞춤형 서비스 때문 아니었을까 싶다.

매콤한 걸 좋아하는 손님에겐 매콤함을 더하고,

양 많은 걸 좋아하는 손님에겐 양을 더해주는 단골집 사장님의 배려가

음식 접시며 냄비마다 푸짐하게 담겨 있었다고나 할까?


그 위로 요즘 음식점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사람 간의 온기로 양념을 더하고,

주문한 음식들만으론 뭔가 좀 부족하다 싶으면 때로 배보다 배꼽이 더 커보일만큼

정말 스페셜한 서비스를 내놓는 단골집 사장님들의 넉넉한 마음 씀씀이가 추가돼

우리 아버지들이 즐겨찾는 단골집 식탁은 늘 맛나고 풍요로웠다.



그 시절, 그 사람 온기와 인정으로 넘쳐나던 분위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까닭일까?

요즘 보면 드럼통 탁자며 연탄 화로 비슷한 걸 들여놓는 음식점들이 종종 눈에 띄곤 한다.

하지만 그 공간을 가득 채웠던 사람 간 온기와 이심전심 마음으로 주고받는 인간 관계가 없는한

그것은 어설픈 복고풍 유행 따라하기에 불과할뿐 우리 아버지 세대의 동네 단골집이 될 수는 없다.


마치 우리가 성장해 자식을 낳아 아버지가 돼도 단박에 우리 아버지들처럼 되는 건 쉽지 않은 것처럼

하드웨어를 그럴듯하게 복제한다고 해서 값비싼 소프트웨어까지 '꽁으로' 따라오는 일은 결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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