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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14. 2021

아버지들은 때론 '미친 황소'가 된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갸기 #50

얼마전 TV 무슨 프로그램에선가 한 출연자가 "저는 불의를 보면 잘 참습니다"라는 말로

좌중을 한바탕 웃음바다로 몰아넣은 적이 있다.

불의를 보면 못 참는다는 사람들은 그동안 많이 봐왔지만

뻔뻔하게 그걸 잘 참는다 말하는 사람은 처음이었던 까닭이다.


그런데 한참 웃다가 보니 문득 웃프다는 생각이 후두부를 강타했다.

웃기긴 한데, 단순히 웃기기만 한게 아니라 가슴 한켠에서 뭔가 울컥하는 느낌이었다.

혈혈단신 세상에 무서울 거라곤 아무 것도 없던 젊은 날에는 많이 달랐었지만

두 아이의 아버지로 살아오면서 나 역시

불의를 보면 아주 잘 참는 사람이 돼버렸다는 슬픈 자각을 했다고나 할까.


망우리 공동묘지에 가보면 어느 하나 핑계없는 무덤은 없다곤 하지만,

아버지로 산다는 건 불의를 봐도 잘 참는 또 하나의 비겁한 자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세상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당하고 굽힘없이 정의롭게 열정적으로 잘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나처럼 아버지라는 이름과 가장이라는 무게 뒤로 숨는 사람들이 더 많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후천적으로 다듬어진 제2의 자아 뒤에 비겁하게 숨어 평소엔 아무 문제 없이 잘들 살아가지만,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살아가다 보면 예외적으로 아버지들이 비겁을 상실할 때가 있다.

누군가 내 자식, 내 가족 같은 '절대 불가촉'의 소중한 존재들을 겁없이 건드릴 때다.


그 순간 아버지들은 가슴 밑바닥 어딘가에 꽁꽁 숨겨뒀던 용기 한 가닥과

벌겋게 달아오른 분노를 딸딸 긁어모아

꼬리에 유황불을 붙여놓은 것 같은 '미친 황소'가 된다.

순한 황소 눈깔을 순식간에 벗어던진채 시뻘겋게 달아올라서는  

앞을 가로막는 건 사람이 됐건 철벽이 됐건 닥치는대로 들이받아 버리는 미친 황소가 된다.



미친 황소를 만나고 싶지 않다면 그러므로 아버지들 앞에선 그 자식이나 가족 같은 존재는 함부로 건드는 게 아니다.

아무리 힘센 사람도, 아무리 독한 사람도 비겁을 상실한 아버지들한테만큼은  쉽게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미친 황소가 되는 순간 그들은 온몸의 뼈가 다 가루가

한 줌 먼지로 부숴지는 그 순간까지

절대 굴하지도, 물러서지도 않는 불굴의 전사로 변신해

끝까지 싸우는 지독한 파이터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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