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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01. 2021

아버지보단 TV만화영화가 더 중했던 시절이 있었다

자신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54

젊은 시절 우리 아버지는 서울의 한 제지공장에서 3교대 근무로 일을 하셨었다.

주 단위로 8시간씩 돌아가며 근무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래서 어떨 땐 아침 일찍 출근을 하셨고,

어떨 땐 저녁 내내 주무시다가 한밤중에 출근하시기도 했다.


아버지가 한밤중에 출근하시는 주일은 어린 내겐 혹독한 시련기였다.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한 본방 사수를 지켜오던 TV 만화영화가

아버지가 밤근무를 위해 곤히 주무시는 바로 그 시간대에 방송됐기 때문이다.


국민학교 고학년 정도만 됐어도 그런 철없는 짓은 저지르지 않았겠지만, 

만화영화를 보고 싶은 마음이 너무나도 앞섰던 어린 나는

단칸방이라 바로 옆에서 아버지가 주무시고 있는 걸 애써 외면한 채 TV를 틀곤 했다.


딴엔 아버지 잠을 방해하지 않는답시고 볼륨을 최대한 낮추거나

혹은 이어폰을 이용해 TV와 거의 얼굴을 맞대고 보긴 했지만

성격이 예민한 편이었던 아버지는 아마도 편히 주무시진 못했을 거다.


그러던 어느날, 밤늦게 하는 무슨 TV 프로인가를 보겠다며

평소 잘 시간보다 훨씬 늦게까지 억지로 잠을 안 자고 버티던 중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잠에서 깨 출근길에 오르는 아버지를 보게 됐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어린 마음에도 짠한 느낌이 몰려왔다.

아마도 '아, 저렇게 아버지는 밤을 새워 일을 하셔야 하는구나' 하는,

주무시는 아버지를 외면한채 TV 만화영화를 탐하던 나일 때는 미처 생각지 못했던 자각이 

일순 몰려왔다고나 할까...



가족들의 안온한 낮과 밤을 지켜주기 위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은

새벽이고 한밤중이고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 자신이 아버지가 되기 전까진 결코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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