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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Sep 30. 2021

부부는 끝내 카메라를 쳐다보지 못했다

아주 특별한 사진 한 장 #20

오일장 장날인 끝자리 1, 6일에 맞춰 전북 순창시장에 들어서면

새벽 일찍부터 허연 김을 바쁘게 뿜어내는 집이 하나 있다.

그 흔해 빠진 간판 하나 없고, 테이블이라야 고작 4개 남짓한 작은 가게지만

50년 넘는 긴 세월동안 순창5일장을 지켜온 터줏대감 중 하나인 장터짜장면집이 그곳이다.


한창 장사가 잘 될 때는 짜장면 한 그릇 먹기 위해 사람들이 길게 줄을 늘어서기 일쑤였고,

덕분에 돈통으로 사용하는 빨간색 양동이 하나가 저녁이면 꼬깃꼬깃한 지폐들로 가득 채워지곤 했지만,

그때조차도 돈이 부족하다거나 한 사람이 있으면 '형편 되는대로' 음식값을 받거나 안 받는 등

넉넉한 인심으로 살아온 부부 덕분에 항상 따뜻한 기운이 감도는 공간이다.



워낙 인심 좋게, 격의 없이 장사를 해온 터라 손님들이 몰려 정신없이 바쁠 때면

'셀프서비스'란 단어가 세상에 나오기도 훨씬 전부터

시골 어르신 등 손님들이 손수 부족한 반찬을 더 챙겨 가시는 일도 다반사였다.

뿐만 아니라 가게가 정말 바쁠 땐 알바비도 안 받은채 내 가게처럼 일해주는 단골이 부지기수고,

직접 밭에서 기르신 거라며 농작물 한 묶음을 슬며시 놓고 가는 어르신들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달작지근한 맛 일색의 요즘 '자장면'들과는 달리

짭조름한 옛맛을 느껴볼 수 있는 정통 '짜장면'을 맛볼 수 있는 이곳은

장날이면 새벽 3시부터 장사 준비에 들어가곤 한다.

새벽장을 열러 나왔거나 새벽부터 장보러 나선 손님들의 허기진 배를 달래주기 위해서다.


혹시 이 근처를 지날 일이 있는 분들은 한번씩 들러

오랜만에 진짜배기 오리지널 '짜장면' 한 그릇 맛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싶다.


※그런저런 얘기를 곁들여 짜장면 한 그릇을 후딱 해치운 뒤 사진 한 장 찍기를 청하자 사장님은 쑥스러워 끝내 고개를 들지 못하셨고, 아내분은 부끄러운듯 혀를 살금 내미셨다. 그 모습이 너무 자연스럽고 보기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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