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 몇 년 전쯤, 개그콘서트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에서<애매한 것들을 정해주는 남자>라는 코너가 인기를 끈 적이 있다. 일상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무엇을 어떻게 기준 삼으면 좋을지 애매한 문제들을 추려내 나름 해답을 제시하는 컨셉이었다.
그 중 '경조금은 얼마를 내야 할까?'라는 문제를 갖고 한 차례 방송을 한 적이 있다. 직장인 등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 중 하나인 경조금을 어떤 경우에, 얼마를 내면 좋을지 가늠해 본 거다. 이때 코너지기들은 "봄 가을 같은 성수기 때는 주머니 부담이 크니까 3만원, 비수기 때는 5만원"이라는 기발한 해답을 제시해 시청자들을 폭소케 만들었다.
내 기억에 남는 해당 방송의 압권은 '10만원을 내야 하는 경우'였다. "친한 친구는 5만원, 아주 친한 친구는 10만원을 내는게 원칙이지만, 내 생각엔 아주 친하지 않더라도 친구 아버지가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경우는 무조건 10만원"이라는 해답을 제시했는데, 자식놈 친구에게 무관심한 편인 아버지가 이름을 알 정도면 절친이라 봐야 한다는 해석은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명쾌한 판결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감탄을 연발하고 개공감하며 해당 방송을 지켜봤지만, 그 뒤로도 경조금을 얼마나 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내게 답이 보이지 않는 어려운 과제였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20년 넘게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찾아드는 청첩장과 부고장은 거의 매번 나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봄 가을 같은 성수기엔 한 달에만도 몇 장씩 청첩장이 날아들기 일쑤였고, 그 틈틈이 부고장도 날아들곤 했는데, 가랑비에 옷 젖는다고 지출비용이 제법 부담스러운 경우가 많았다.
친척이나 친한 친구 등 별 망설임을 필요로 하지 않는 가까운 주변인들로부터 날아드는 청첩장이나 부고장은 고민되지 않았다.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등할 여지가 없었고, 그 금액 역시 친밀한 정도라든가 그동안 서로 주고받은 정리(情理)에 따라 가감하면 되니 별로 어려울 게 없었다.
문제는 축의금이나 조의금을 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애매한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았을 때였다. 보내온 사람은 나름 보낼만 하다 판단해서 보냈을 테니 안 하기엔 미안하고, 막상 하려면 이거 공연히 헛돈 쓰는 거 아닌가 고민되는 경우가 적지 않아서다. 개중엔 평소 연락도 없다가 갑자기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보내오는 사람들도 있었고, 그렇게 문득 연락해 온 뒤 다시 감감무소식인 사람들도 적지 않았다.
20년 넘게 나를 괴롭혀온 이 같은 고민을 한 방에 해결해 준 건 우리 아버지였다. 지난 20여년 간은 우리집에 이렇다 할 큰일이 없어 참고 삼을만한 판단기준 하나 없이 청첩장이나 부고장을 받는 족족 현금인출기 노릇을 해왔는데,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비로소 뚜렷한 판단기준 하나가 생긴 까닭이다.
상부상조를 의미하는 '부조'의 원뜻에 맞춰 관계가 좀 애매한 주변 사람들의 경우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된다는 판단이 들었다. 축의금이나 조의금 액수도 역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에게 보내온 그들의 성의를 기준점으로 삼으면 될듯 싶었다. 미처 소식을 못 들어 성의 표시를 못 한 사람도 있을 수 있으나, 그 부분은 따로 사정을 감안하면 될 일이었다.
이 과정에서 한 가지 눈길을 끈 건 MZ세대의 실리주의였다. 꼰대 소리 들을까 봐 '라때' 얘기는 가급적 피하고 싶지만, '라때'는 회사 내 인접 부서에 같이 근무하고 안면이 좀 있으면 거의 99% 축의금 혹은 조의금을 전했었던 반면 우리 아버지 돌아가실 때 보니 MZ세대는 달랐다. '어줍잖은 관계'보다는 눈앞의 실리를 따져보는 듯한 성향의 친구들이 많았다고나 할까.
그 솔직함이 나는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나 역시 '어줍잖은 관계'의 후배들에게까지 꼬박꼬박 축의금과 조의금을 전달해야 하는 마음의 짐과 번거로움을 덜 수 있어서다.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전달해 온 경조금은 손실비용이라 생각하면 그만이었다. 장사(?)란 건 때론 밑질 때도 있고 남을 때도 있는 법이니까...
물론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라는 건 '1+1=2'가 되지 않는 경우도, '1-1=0'이 되지 않는 경우도 종종 있다는 걸 잘 안다. 경조금 5만원, 10만원을 받았다고 해서 나중에 그대로 돌려주는 게 아니라 내 경제상황, 상대방 형편에 따라 얼마든지 가감이 가능한 게 사회생활이고 인간관계다. 이철환 작가님의 수필 <축의금 만 삼천원> 사례처럼 100만원보다 값진 만 삼천원도 있는 거고, 천원 만도 못한 100만원도 있을 수 있다고나 할까.
중요한 건 돈의 액수가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마음이다. 사는 형편이 어려워 가장 친한 친구임에도 축의금 만 삼천원 밖엔 전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천금보다 무거운 우정을 담아 보낸 이철환 작가님의 사과장사 친구 같은 마음만 있다면 돈의 액수 따위는 사실 중요하지 않다. 그런 마음을 눈 앞에 보여주거나 보는 게 쉽지 않고, 봉투에 담아 전하는 건 더더욱 어려운 까닭에 우리 같은 속물들은 얼마 간의 돈을 대신 담는 거뿐이다.
돌아가신 아버지 덕분에 강력한 치트키를 하나 얻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내게 경조금을 누구에게 얼마나 할까 하는 문제는 난제 중 난제다. 세상엔 친하고 안 친하고를 떠나 경조금을 전해야 할 상대도 있는 법이고, 사회생활을 하려면 하기 싫어도 꼭 해야만 하는 변수 또한 존재하는 까닭이다.
개그콘서트 같은 인기프로그램에서 인기 개그맨이 나와 나름의 논리와 합리적 기준을 근거로 "앞으론 친한 친구는 5만원, 아버지가 이름 아는 절친은 무조건 10만원 하는겁니다~잉!" 하고 아무리 외쳐도 현실 세계에선 어느 주말드라마 유행어처럼 "아닌 건 아닌겨"다. '1+1=2'가 정답이 되는 세상은 아이들 교과서 속에서만 존재할 뿐 우리가 뼈와 살을 맞부딪치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현실 세계에서는 오답이 정답 대접을 받는 경우도 얼마든지 있으므로...그래서 경조금은 여전히 내겐 어려운 숙제다.
이철환 작가님의 수필 <축의금 만 삼천원> 내용을 잘 모르시는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하시기 바란다. 안 읽어본 분들은 한번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인터넷을 뒤져 찾아냈다. 감동에 취약한 분들은 크리넥스 티슈가 필요할 수도 있으니 미리 준비해 두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