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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12. 2021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던 바보같은 나의 꿈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56

건방기가 하늘을 찌르던 어린 시절에는

'아버지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곤 했었다.

작은 회사에서 3교대 근무를 하시느라 늘 피곤에 지친 채

후즐근한 작업복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이 싫어서다.


흰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멋드러지게 매고 출근하는 다른 집 아버지를 보면

까닭 모를 열패감에 젖어 마음 속으로 아버지에게 화를 내곤 했었다.

비록 어린 나이라 세상 돌아가는 꼴은 잘 몰랐지만

어렴풋하게나마 화이트칼라가 대접받는 사회라는 걸 느꼈던 건 아닌가 싶다.


그런 내 마음을 아버지는 눈치채기라도 하셨던 걸까?

틈만 나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너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아라",

"공부 열심히 해서 꼭 대기업에 들어가 양복 입고 출근해라" 하는 말을

아버지는 앵무새처럼 몇 번이고 반복하시곤 했었다.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어린 시절 마음과 아버지의 바람 덕분인진 몰라도

대학을 졸업한 뒤 나는 어렵게나마 대기업이란 곳에 입사할 수 있었다.

생산공장에서 일 하느라 양복을 입고 출근할 일은 별로 없지만,

굳이 분류하자면 화이트칼라라 할 수 있으니 바람을 이룬 셈이다.



그렇게 어른이 돼 어느덧 어린 시절 내가 바라보던 아버지 연배가 됐는데,

막상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아버지처럼 살지 않겠다'던 어린 시절 생각이

얼마나 바보같은 것이었는지 알게 됐다.

'아버지처럼'은 고사하고 '아버지만큼' 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불혹을 넘겨 나이 오십줄에 들어선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됐기 때문이다.


3교대 근무에 특근을 밥먹듯 하시고도 늘 부족하기만 한 월급으로

4남매나 되는 식구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아버지가 감내해야 했던 헌신과 희생은

나로선 도저히 흉내내기조차 힘든 일임을 절감하고 있다.


지금 바라마지 않는건 제발 '아버지 반만큼'이라도 열심히 잘 살아서

먼 훗날 우리 아이들이 내가 우리 아버지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반만큼이라도

기억해주고 때론 그리워해 줬으면 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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