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못하는 건 참아도 싸가지없는 아들은 못참아!"
소소잡썰(小笑雜說)
얼마전 섬진강 쪽으로 드라이브를 갔다가 다슬기 수제비 한 그릇 먹기 위해 아내와 함께 단골식당에 갔을 때 일이다. 연휴라 어딜 가나 차도 많고 사람도 많았는데, 단골식당 역시 차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덕분에 대기번호표를 받아들고 문 앞에서 30여 분이나 기다려야만 했다. 우리 앞엔 앞서 대기 중인 열 댓명쯤 되는 사람들이 대기번호표를 든 채 문 앞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이때 승용차 한 대가 좁은 주차장과 도로에 차체를 반반 걸친 채 머뭇머뭇 식당 앞에 멈춰섰다. 주차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는데, 식당 규모가 크지 않아 도로와 접해 4~5대 정도 주차공간이 고작이라 빈 자리가 없었다. 좀 더 앞으로 가면 다른 주차공간이 있었지만, 초행길인듯 문제의 차는 그 자리에서 계속 밍기적거리고 서있었다. 아마도 대기자들이 제법 많아보이자 거기서 밥을 먹을지 말지를 의논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이때였다. 뒷차들 밀리는 건 아랑곳없이 '길막'을 해버린 채 서있는 그 차 때문에 화가 난듯 뒤따르던 시내버스가 "빠~~~앙" 하고 신경질적으로 클랙션을 울려댔다. 편도 1차로에 중앙분리봉까지 있는 도로라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보니 화가 난 모양이었다. 그러자 우리 앞에 서있던 초등학교 1~2학년쯤 돼보이는 남자아이 하나가 "에이 씨 깜짝이야!!!" 하고 신경질적으로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시내버스 클랙션 소리에 1차 놀랐던 식당 앞 대기자들 상당수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을 만큼 제법 우렁찬 목소리였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그런 소란을 야기한 원인 제공자는 따로 있었던 지라 딱히 그 아이를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클랙션 소리가 너무 요란해 어른들도 깜짝 놀란 판에 어린 아이는 얼마나 더 놀랐을까 하는 생각들이었을 거다. 하지만 단 한 사람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남자아이의 엄마였다. 아이가 시내버스를 째려보며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기 무섭게 자신 쪽으로 돌려세우더니만 "아들, 엄마가 공부 못하는 아들은 참아줘도 싸가지 없는 아들은 못 참는 거 알지? 이게 도대체 뭐하는 행동이지?" 하고 단호하게 나무란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는 덧붙여 말하기를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엄마는 부끄러워서 여기서 밥을 먹을 수 없으니까 밥 먹지 말고 우리 그냥 갈까?" 하고 아들을 협박(?)했다. 점심시간을 한참 지난 시간인데다가 대기 행렬 때문에 2~30분은 기다리고 있던 중이라 거기서 밥을 못 먹으면 언제 밥을 먹을 수 있을지 모를 상황이었다. 맛난 수제비 한 그릇 먹을 생각에 배고픔을 참으며 신이 나 달려왔을 아이 입장에선 그야말로 청천벽력이나 다름 없었을 거다.
결국 아이는 풀 죽은 목소리로 "엄마,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하고 잘못을 빌었다. 길막 운전자와 클랙션 울린 시내버스 운전자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변명의 여지는 있었지만, 일단 밥은 먹고 봐야겠다는 절박한 의지가 느껴지는 신속한 자세전환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순순히 잘못을 시인하며 잘못했다고 사과하자 아이 엄마는 금방 화를 풀었다. 그리고 잠시 후 자기들 차례가 되자 맛난 수제비를 먹으러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거 아닌 이 사건을 보며 나는 왠지 '심봤다!'는 느낌을 받았다. 길거리에서 우연히 대한민국 현모양처의 대명사인 '신사임당' 여사님을 영접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입이 좀 걸다는 것만 다를 뿐 자식 교육에 엄격하고, 자식이 올바른 사회구성원으로 잘 성장할 수 있도록 결연하게 회초리를 들 줄 아는 그 모습은 완전 현대판 신사임당 여사에 다름 아니었다.
번잡한 식당 같은 곳에서 천방지축 뛰어다니는 아이를 방치하거나, 누가 이에 대해 따끔하게 나무라려 들면 "애들이 다 그러면서 크는 거죠!" 하며 적반하장 쌍심지를 돋우는 엄마들만 보다가 모처럼 제대로 된 엄마를 만나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한 자녀 정책 때문에 중국 부모들이 자식을 '소황제'처럼 떠받들어 키우는 걸 흉내내기라도 하듯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도 아이들을 무조건 떠받들며 키우는 가정이 많아지고 있는 게 안타까워서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일부 식당과 카페가 매출 하락 우려와 맘카페들의 조리돌림까지 감수해 가며 앞다퉈 '노키즈존'을 선언하고 있는 것도, 공중예절 같은 건 밥 말아 먹은 채 제 자식 귀한 줄만 아는 일부 엄마들이 '맘충'이란 불명예스런 별명으로 불려지고 있는 현실도 안타깝긴 마찬가지다. 갈수록 출산율이 낮아져 아이들 보기도 점점 힘들어져 가는 시대에 그나마 세상의 빛을 본 아이들이 부모 잘못으로 따돌림과 미움을 받고 살아서야 되겠는가?
자식을 개망나니로 키우고 싶은 부모는 아무도 없을 거다. 기왕이면 율곡 이이 같은 반듯한 성품을 바탕으로 국가와 사회의 동량이 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을 거다. 그렇다면 답은 부모가 먼저 신사임당 같은 사람이 돼야 한다는 거다. 거창하게 역사에 이름씩이나 남길 정도까진 아니더라도 자식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고 또 보여줘야 한다. 율곡 이이 뒤엔 신사임당이 있듯이 문제아 뒤에는 항상 문제 부모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