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먹거리를 챙겨놓으려 차를 끌고 동네 마트에 가고 있을 때 일이다. 신호등 없는 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맞은편 방향에서 배달 오토바이 한 대가 맹렬히 달려 들어오는게 보였다. 차량 흐름상 우회전하는 내 차가 조금 빨랐지만, 예의 배달 오토바이는 빨리 갈 욕심에 내 차 앞쪽을 향해 맹렬하게 돌진해왔다.
하지만 의욕만 앞섰을 뿐이라 내 차 앞으로 끼어들기엔 타이밍이 늦어 있었다. 그러자 그는 맞은편에서 차가 달려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선을 넘어 내 차 앞으로 끼어 들었다. 순간 나는 클랙션을 울려 경고를 줄까 잠시 고민했지만, 그냥 두기로 했다. 그 정도로 자기 잘못을 깨달을 사람이었다면 애당초 그런 무리한 운전을 하지 않았을 거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그때 뭔가 거슬리는 게 내 눈에 들어왔다. 배달 오토바이 뒷쪽 짐싣는 함에 붙어있는 문구가 그것이었다. 거기에는 '사고 발생시 배달음식부터 먼저 구해주세요' 라고 쓰여 있었다. 그걸 보는 순간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갑자기 맹렬한 화가 치밀어 올랐다. 배달 오토바이들의 난폭운전이야 워낙 자주 접해온 일이라 참아줄만 했지만, 이 문구만큼은 정말 참아주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장난이라도 그렇고 인명 경시 풍조가 판을 치는 세상이라고 해도 그렇지, 단 하나뿐인 소중한 자기 생명보다 배달음식부터 챙겨달라는게 제 정신 가진 놈이 할 말인가 싶었다. 몇 천원짜리 배달음식보다도 뒷전인 생명이라서 그렇게 중앙선을 넘나들며 곡예운전을 하나 싶어 더 화가 났고, 또래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한 사람으로서 내 자식놈 얼굴이 오버랩돼 더 속이 상했다.
문제는 그런 사례가 비단 예의 배달 오토바이 한 대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거였다. 운전을 하다 보면 차량 뒷쪽에 말도 안 되는 문구들을 붙이고 다니며 다른 운전자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사람들이 하나 둘이 아니다. '초보라고 무시하면 팬다', '차 안에 판검사될 소중한 내 새끼 있다' 같은 게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번역하자면 '날 건들면 가만 안 두겠다'는 협박에 다름 아니다.
'아이가 타고 있어요. 사고 시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라거나 '초보운전', '초보라서 죄송합니다' 같은 문구들도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경우가 왕왕 있다. 문구 자체야 지극히 상식적이고 평범한 문구들이지만, 그걸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의 이율배반적인 운전 태도 때문이다. 아이가 타고 있다며 뒷차의 양보내지 배려를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아이 안전 따윈 관심도 없다는듯 난폭운전을 일삼는 운전자, 초보라서 죄송하다면서도 '당황하면 우측 깜박이 켜고 좌회전할지도 모른다'고 협박하는 일부 운전자들의 몰상식한 태도 말이다. 다른 운전자들에겐 양보와 배려를 요구하면서 정작 본인은 다른 운전자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거나 협박을 일삼는 몰염치하고 몰상식한 사람들이 너무 많다.
차량 뒤에 붙이는 각종 안내문구들은 뒤따라오는 다른 차 운전자들과 서로 대화하고 소통하기 위한 거다. 대화와 소통의 기본은 상대를 존중하고 인정한 뒤 먼저 예의를 갖추는 거고, 꼭 필요한 말만 가려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필수적이다. 상대방에 대한 예의는 도외시한 채 나만 존중받기를 바라고, 나를 중심으로 도로가 흘러간다는 착각 속에 운전하는 건 무례함을 넘어 사고 위험을 유발하는 짓이다.
자동차는 인간처럼 말을 하지 못 한다. 그래서 방향지시등 같은 신호장치를 이용해 최소한도로나마 자기가 가려 하는 방향을 얘기하고, 비상깜빡이를 통해 미진하나마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기도 하는 거다. 그 부족한 부분을 '초보운전', '아기가 타고 있어요' 같은 뒷유리에 붙이는 문구들로 표현하는 건데, 다른 운전자의 배려와 도움을 부탁하기 위한 본질을 망각한 채 눈살 찌푸리는 표현을 일삼는 건 한 판 붙어보자는 시비 걸기에 다름 아니다.
내 차에 내가 뭐라 써붙이고 다니건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 말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거다. 맞는 말이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게 범죄가 아닌 한 누구도 간섭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그런 상식 밖 문구들이 넘쳐나다 보면 결국 진짜 배려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점에서 남의 일이라고만 치부할 순 없다. 내 가족 가운데 누군가도 '초보운전' 혹은 '아기가 타고 있어요' 문구를 부착한 채 도로에 나설 수도 있는 일이니까.
불과 10~2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길거리에서 누군가 "지갑을 잃어버려서 그러는데 차비 좀 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하고 부탁해 오면 열에 일곱 여덟은 기꺼이 지갑을 열곤 했었다. 하지만 이게 대한민국 국민들의 인정 넘치는 마음을 악용한 일종의 피싱 사기임이 알려지면서 요즘은 정말 지갑을 잃어버렸어도 누군가의 도움을 얻기 힘든 지경에 이르렀다.
마찬가지로 배려와 도움을 부탁하는 문구 대신 '사고 발생 시 배달음식부터 구해주세요' 같은 쓰레기 문구가 난립하게 되면 사람들은 그런 류의 메시지들에 더 이상 주목하지 않게 될 것이다. '초보운전'이니 '사고 시 아이부터 구해주세요'를 붙여놓고 난폭운전이나 일삼는 이들이 많아지면 더 이상 그런 문구 붙인 차들에게 배려나 양보를 기울이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도로 위는 배려와 양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든 살벌한 전쟁터가 될 것이고, 이제 갓 도로에 나오는 초보운전자 같은 가장 약한 자들이 제일 먼저 희생양이 돼 피를 흘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