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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18. 2021

아비 없는 자식 없고, 자식 없는 아비 없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57

요즘은 너도나도 카메라 한 대씩은 들고 다닐 정도로 사진 찍는게 보편화 됐지만 

디지털 카메라가 나오기 전까지만 해도 사진은 일부 전문가들만의 고유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카메라 자체가 전당포에서 취급하는 귀중품 중 하나일 정도로 가격이 만만치 않았고, 

필름값이나 인화비 등은 일반인들이 취미 삼아 즐기기엔 많이 부담스러운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 가정집에서는 카메라를 보유하고 있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반면 아기 돌이라든가 특별한 날 기념사진을 남기고 싶은 수요는 그때 역시 많았는데,  

덕분에 리어카 같은데다 배경용 세트를 싣고 돌아다니는 이동식 사진관이 성행하기도 했었다.  

또 유명 여행지나 학교 졸업식 같은 뭔가 기념할만한 게 있는 장소에는 거의 반드시 

기념사진을 찍어주는 사진사들이 몰려 들어 경쟁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밀기도 했더랬다.


볼거리 즐길거리가 별로 없었던 그 시절엔 카메라 든 사람을 구경하는 것도  

약장사나 뻥튀기 장사의 화려한 퍼포먼스 못지 않은 재미난 구경거리였다.

빛이 들어가지 않도록 검정 통 등으로 이중삼중 싸맨 필름을 꺼내 

카메라에 넣은 뒤 필름감기 레버를 재빨리 2~3차례 감으며 빈 셔터질을 하고 나면 

비로소 촬영 준비가 완료됐는데, 카알못(카메라를 알지 못하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 일련의 과정에서 전문가 포스가 뿜뿜 뿜어져나오는 게 제법 근사해 보이곤 했었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요즘 나오는 디지털 카메라는 모든 과정이 참 간편해졌다. 

필름 대신 메모리카드만 꽂으면 돼 빛이 들어간다든가 하는 문제가 생길만한 건덕지도 없어졌다.

뿐만 아니라 서텨속도라든가 노출까지 카메라가 알아서 다 맞춰주는 자동기능까지 갖추고 있어 

카알못이라 할지라도 셔터 누르는 법만 알면 얼마든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됐다.



한 가지 아이러니한 건 이런 편리하고 기능 좋은 디지털 카메라가 지천으로 보급됐음에도 

아직까지 필름카메라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많고, 새롭게 입문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는 거다.

혹자는 최신 디지털 카메라가 선사하는 바짝 날 선 선명한 화질과 강렬한 색감보다는 

필름카메라 특유의 뭉툭한 화질과 진득한 색감이 더 좋다는 이유로, 

혹자는 촬영 즉시 결과물을 확인할 수 있는 디지털 카메라의 번갯불에 콩 구워먹는 시스템보다는 

현상과 인화 과정을 거치며 천천히 곱씹어먹는 필름카메라 느낌이 좋다는 이유에서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뚝배기 해장국 맛, 김치찌개 맛이 나는 아버지 세대의 산물이라면 

디지털 카메라는 피자 맛, 스파게티 맛, 3분 요리 맛이 나는 자식 세대의 산물이다.

어느 것이 더 좋고 옳다기 보다는 조리 방식이 다르고 좀 다른 맛이 나는 요리 같은 거다.

그리고 필요하다면 김치찌개에 스파게티 면을 넣어 끓여먹는다든가 하는 색다른 조합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요리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아날로그 카메라는 시대에 뒤떨어진다며 굳이 백안시하거나 배척할 필요도 없는 거고, 

디지털 카메라는 사진 찍는 재미나 맛이 제대로 안 난다며 눈을 내리 깔 필요도 없다. 

아버지 없는 자식 없고, 자식 없는 아버지 또한 없는 법이니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부대끼면 또 부대끼는대로 서로를 보듬으며 함께 살아가면 좋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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