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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19. 2021

"땅을 파봐라, 두부 반 모가 나오나?"

소소잡썰(小笑雜說)


얼마 전 일이다. 쉬는 날을 맞아 아내와 함께 단골 순두부집에 가 밥을 먹고 있는데, 옆자리에서 젊은 부부가 티격태격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젖먹이 아기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신혼부부 같았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분명 즐거운 마음으로 가족 외식을 하러 나왔을 터인데 왜 다투나 싶어서다. 마침 우리와 자리가 가깝다 보니 본의 아니게 그 티격태격 다투는 사연을 듣게 됐다.


알고 보니 이들 부부가 다툰 이유는 고작 두부 반 모 때문이었다. 이들 부부는 이날 예의 순두부집 대표 메뉴 가운데 하나인 순두부찌개와 생두부를 시켜 먹은 듯 했다. 그리고 먹다 보니 두부가 반 모 가량 남은 모양이었다. 이에 아내 쪽은 남은 두부를 싸달라고 해 집에 가져 가자고 했고, 남편 쪽은 "쪽 팔리게 두부 반 모 갖고 뭘 싸달라고 그러냐?"고 서로 의견이 엇갈린 모양이었다.


고작 두부 반 모 때문에 이들 젊은 부부는 급기야 그 사람 많은 식당 한복판에서 언성을 높여 싸우게 됐고, 얼마간의 입씨름 끝에 결국 아내가 승리를 거뒀다. "땅을 파봐라, 두부 반 모가 나오나?"라는 아내의 날선 공격이 남편의 소위 '쪽 팔리게' 방어막을 종잇장 찢듯 아주 간단히 찢어버린 까닭이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고, 아내 말을 잘 들어야 늙으막에 고생을 면한다 했으니 아주 현명한 패배였다.


이들 젊은 부부의 칼로 물베기 꽁냥꽁냥 부부싸움을 지켜보며 참 주관도 뚜렷하고 열심히 사는 아름다운 커플이라는 생각을 했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워진 시대를 살다 보니 요즘은 어지간한 것쯤은 귀한 줄도, 아까운 줄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은데, 그런 모습들만 보다가 두부 반 모를 살뜰히 아낄 줄 아는 젊은 부부를 만나니 참 반갑고 고마웠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나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고 반성해보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개구리 올챙이적 생각 못 한다고 어느 순간부턴가 별 생각없이 충동적 소비를 일삼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다. '우리 형편에 돈 몇 만원 정도 쓰는 게 뭔 대수야?' 생각하며 불요불급한 지출을 일삼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 몇 만원이 모여 금방 몇 십 만원이 되고 몇 백 만원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모르는척 외면했다.


요즘 여기저기서 경제가 너무 어려워 못 살겠다는 아우성들이 터져나오고 있다. 아닌게 아니라 코로나 사태다 세계 경제위기다 뭐다 해서 국난이라고 일컬어졌던 IMF 때보다도 더 살기 힘들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경제가 어려운 것과는 별개로 풍요의 시대를 살아가다 보니 어느새 몸에 배어버린 느슨한 우리 경제관념도 한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예의 젊은 부부처럼 즐길 건 즐기되 먹다 남은 두부 반 모도 알뜰하게 챙기는 현명한 자세로 살아간다면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나마 우리네 가벼운 지갑도 조금은  묵직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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