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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Oct 26. 2021

세상을 공짜로 먹으려 들지 마라!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58

대전 소제동에 있는 대창이용원은 간판 이름에서부터 진한 아버지 향기가 묻어나는 곳이다. 열네 살 어린 나이로 국민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정든 고향을 등지고 떠나와 '쇠바리깡'으로 머리통을 쥐어터져가며 정말 눈물 겹게 이발일을 배운 이종완 선생이 이발사 면허를 따 첫 가게를 열게 되자 아버지가 고심 끝에 지어준 이름이기 때문이다.


큰 대(大)자에 창성할 창(昌)자를 붙여 '크게 번창하라'는 의미로 지어 주셨는데, 한학에 조예가 깊어 동네 사람들이 애 이름 좀 지어달라 줄을 서곤 했었다는 선생의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대견한 아들을 위해 정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한 끝에 이 이름을 선물하셨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 덕분이었는진 몰라도 선생의 이발소는 지난 60년 간 성업을 누려왔다. 대전역 바로 뒤 철도관사촌 마을이다 보니 항상 짧은 머리를 유지해야 했던 역무원 손님들이 넘쳐났고, 인근 학교로 등하교하는 학생들 통학로이다 보니 오며가며 들르는 학생 손님들도 많았다. 덕분에 전성기엔 비좁은 가게에 종업원을 다섯 명이나 두고 하루가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일을 했더랬다.



젊은 시절엔 이발소 간판에 가로새긴 아버지의 큰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죽어라 일에 매진했다면 결혼해 아이 셋을 둔 뒤론 아버지로서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더 한층 혼신의 힘을 다해 일했다. 다들 먹고 살기 힘들었던 시절이었지만, 남다른 이발 솜씨에 성실함까지 더한 선생의 이발소는 손님이 끊이지 않았고, 덕분에 자식들 모두 하고 싶은 공부를 원없이 할 수 있게 충분히 뒷바라지 해줄 수 있었다.


일을 배우는 과정에서 하고한 날 쇠바리깡으로 머리통을 쥐어터질 땐 정말 당장 그만두고 싶었을만큼 힘들었지만, 그런 힘든 과정을 거쳐 뼈에 사무치도록 아프게 배움을 얻은 덕분에 그 뒤 삶은 오히려 평탄하고 쉬웠다는 선생. 조금만 일이 힘들다 싶으면 아예 도전하려 들지 않거나 중도에 쉽게 포기하곤 하는 요즘 젊은이들을 볼 때면 그래서 "인생사 새옹지마라, 지금 많이 힘들면 나중엔 그만큼 편안해지고, 좋은날도 올 거"라며 조언을 아끼지 않고 계시다.


'세상은 살기 힘들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고 <쉽게 쓰여진 시(詩)>를 통해 윤동주 시인은 탄식했다.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정작 우리보다 몇 배는 힘든 세상을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들 역시 너무 쉽게 사는걸 두려워하고 경계하시곤 한다. 세상엔 공짜가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들에 비춰보면 우리 자식들은 너무 쉽게, 너무 편하게 사는 길만 갈구하며 사는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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