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을 가로막고 있는 이중주차 차량을 미는데 느낌이 쌔했다. 보통은 처음 밀기 시작할 때 살짝 저항하는 느낌이 들다가 스르륵 굴러가는데, 이번엔 조금 움찔하더니 뿌리라도 박힌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기어를 중립이 아닌 P에 놨거나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놓은 모양이었다. 순간 '바빠 죽겠는데 어떤 정신나간 인간이 이따위로 주차를 해놓은 거얏!' 하는 생각이 들어 울컥했다. 출근시간이었다.
황급히 문제의 차량 앞뒤를 살펴보니 뒷쪽엔 '초보운전' 안내문구가, 앞쪽엔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이른 아침인만큼 곤히 자느라 안 받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을 하며 전화를 걸었는데, 5~6번의 벨소리가 울린 끝에 자다 깬듯 졸린 목소리로 "여보세요~" 하는 음성이 들려왔다. 불행 중 다행이었다.
전화기 저편에서 들려온 건 젊은 여자 목소리였다. '초보운전' 안내문구가 붙어 있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운전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젊은 친구구나 싶었다. 바쁜 마음에 나는 "0000 아반땡 차주인 맞으시죠?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려있는지 차가 안 밀리니까 내려와서 이동 좀 시켜주세요" 하고 용건만 짧게 얘기했다. 그러자 상대방은 화들짝 놀라며 "죄송합니다. 바로 가겠습니다" 하곤 전화를 끊었다.
3~4분쯤이나 기다렸을까? 주차장 저쪽에서 누군가 다다다닥 뛰어오는 게 보였다. 그러더니 번개처럼 가로주차된 차량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풋~" 하고 웃음이 나왔다. 가로주차를 잘못해 바쁜 내 출근시간을 5분 넘게 잡아 먹긴 했지만, 그 서두는 모습에서 풋풋한 초보 운전자의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마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실 젊은 여자 목소리가 전화를 받는 순간 나는 얼마간 걱정을 했었다. 몇 년 전 한 번 겪은 바 있는 불쾌한 경험이 다시 반복되는거 아닌가 해서다. 그때도 아침 일찍 출근을 하기 위해 주차장에 내려갔는데, 이번 경우처럼 아반땡 한 대가 사이드 브레이크를 건 상태로 내 차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급한 마음에 앞유리에 붙어있는 번호로 전화를 해 차를 이동시켜 달라 요청했는데, 젊은 여자로 추정되는 상대방 반응이 시큰둥했다. 그러더니 7~8분은 지났을까 싶을 때쯤 불만스런 몸짓으로 제 엄마까지 대동한 채 느릿하게 걸어와 차량을 이동시켰다. 그 태도가 마음에 안 들긴 했지만, 아침 일찍부터 낯선 아저씨가 전화를 했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이해하는 마음으로 난 서둘러 출근길에 올랐다.
그런데 그로부터 5분쯤 후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받아 보니 문제의 이중주차 아반땡 운전자였다. 생각해보니 열이 받아 못 참겠다는 듯 그녀는 씩씩대며 "내가 사이드 브레이크 채우지도 않았는데, 왜 아침부터 재수없게 전화해서 차를 빼라 마라 하는 거에요?" 하고 따져 물었다. 순간 나는 '내가 뭔가 실수나 잘못을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멍해졌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해봐도 그건 아니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었다. 남은 저 때문에 피 같고 황금 같은 출근시간 10분여를 허비했는데, 자기는 사이드 브레이크를 채운 적이 없다며 성질을 부리니 기가 막혔다. 하지만 같이 성질 부리며 젊은 여자와 싸워봐야 기분만 더 상할 뿐이란 판단이 들었다.
이런 경우 문제의 아반땡이 사이드 브레이크가 걸려 있었다는 걸 증명만 하면 입씨름 할 필요조차 없는 거였다. 그래서 나는 "사이드가 채워져 있었는지 아닌지는 댁의 차 블랙박스를 확인해 봐요. 내 차 빠져나올 공간 만들기 위해 내가 댁의 아반땡하고 그 앞에 있던 그랜땡 2대를 밀었는데, 전방 블박 영상 찾아보면 내가 그랜땡을 한 손으로 미는 거 보일 거에요. 후방 블박보면 내가 댁의 아반땡 한 손으로 밀다가 안돼 두 손으로 미는 장면 보일 거구요. 상식적으로 아반땡이 그랜땡보다 더 무겁다고 생각해요?" 하고 물었다.
그러자 길길이 성질을 부리던 그녀는 "내가 블박 확인해보고 다시 전화할게욧!" 하고 한 발 물러섰다. 증거인 사이드 브레이크 걸린 차도 이미 치웠으니 제 딴엔 큰소리로 억지를 부리면 이길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지만, 한 마디로 가소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나는 쐐기를 박듯 "혹시 녹화가 잘 안 됐으면 그 상황을 다 목격한 내 차 블박 영상 보내줄게요" 하고 덧붙여 말해줬다.
그녀는 분해 죽겠다는 듯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었고, 그 뒤 자기 차 블박 영상을 확인했는지 어쨌는진 몰라도 당연하게도 전화를 다시 걸어오지 않았다. 사과문자 같은 것도 물론 없었다. 나는 그 별로 반갑지 않은 인연과 상황을 다신 마주하고 싶지 않아 내 휴대폰에 '우리 아파트 주차 진상녀'라는 별명으로 그녀 번호를 저장해놨다. 혹시라도 이중주차 문제로 멋모르고 그녀 차를 다시 마주치게 되면 식별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어제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 몇 년 전 일이었다.
가로주차한 자기 차에 사이드 브레이크가 채워져 있다는 연락을 받고 다다다닥 뛰어와 진심 미안한 몸짓으로 이동주차하는 젊은 여자 모습에 미소지으며 나는 몇 년 전 적반하장 그녀를 떠올렸다. 같은 상황인데도 문제에 임하는 사람 태도 여하에 따라 이렇게 결말이 다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었다.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행동 하나로 천 냥 빚을 질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은 누구나 실수를 한다. 하지만 '한 번은 실수고, 두 번은 습관이며, 세 번은 고의'라는 말이 있듯이 실수는 한 번 실수에서 끝을 맺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내가 실수했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하고 반성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를 할 순 있지만, 마찬가지로 사람이기 때문에 같은 실수를 계속 반복해선 안 되는 거다. 그래야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