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잡썰

월세 12만원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한 결혼생활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25년 전, 아내와 나는 보증금 200만원에 월세 12만원짜리 허름한 단칸방에서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여름이면 낮동안 뜨겁게 달구어진 지붕으로부터 견디기 힘든 열기가 뿜어져 나와 사람을 파김치로 만들기 일쑤였고, 겨울이면 여기저기서 새들어오는 찬 바람 때문에 방 안임에도 불구하고 손발이며 얼굴이 차갑게 얼기 일쑤였다.


방꼴이 그 모양이다 보니 살림살이도 형편 없었다. 아내가 결혼 전 쓰던 20인치 배불뚝이 TV 한 대와 구형 가스렌지, 결혼생활 시작과 함께 할부로 장만한 냉장고와 세탁기 한 대가 우리가 가진 살림살이의 거의 전부였다. 그나마도 단칸방 살림에선 공간이 부족해 움직일 때마다 걸리적거릴 정도였다.


그렇게 1년여를 살며 아내와 나는 맞벌이로 부지런히 돈을 모았다. 그리고 1년여가 지났을 무렵, 아내와 나는 그 동안 모은 돈에다가 은행 융자를 보태 13평짜리 아파트 하나를 전세로 얻어 이사를 했다. 지은 지 20년이 넘어 여기저기 금이 가 있고, 덕분에 겨울이면 창틈은 물론 벽틈에서도 찬 바람이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기 일쑤였지만, 주인집과 맞붙어 사느라 걸핏하면 눈치를 봐야 했던 생활에서 해방된 것만으로도 우리에겐 큰 행복이었다.


결혼 후 이 두 번째 보금자리에서 아내와 나는 2년을 살았다. 그 사이 우리집엔 예쁜 쌍둥이 공주님이 태어나 식구수가 불었고, 옷을 넣어두는 서랍장과 제법 쓸 만한 오디오 하나, 딸들의 살림살이 등 사람 사는 집에 필요한 이런저런 물건들이 집 크기에 비례해 늘어나기 시작했다.


두 번째 보금자리에서 2년을 산 뒤 우리 가족은 25평짜리 아파트로 다시 이사를 했다. 아이를 키우고 어쩌고 하다 보니 여윳돈은 없었지만, 집안 곳곳으로 새들어오는 찬 바람 탓인지 딸들이 바람만 좀 차가워졌다 하면 감기를 달고 사는 모습이 영 안쓰러워서였다. 하필이면 국난이라까지 일컬어지던 IMF 시절이라 주변 여건이 녹록치 않았지만, 어린 딸들을 위한다는 이유로 비싼 은행 이자 따윈 나 몰라라 겁없이 덤벼들었다.


우리 가족이 세 번째로 보금자리를 튼 곳은 지은 지 10년쯤 된 아파트였다. 이곳 역시 건물이 허름하고, 겨울이면 어딘가에서 찬 바람이 스며들긴 했어도, 보일러만 좀 돌리면 바닥이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는 게(앞서 살던 아파트는 보일러를 돌려도 보일러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가 의심스럴 정도로 영 신통치가 않았다) 무척이나 좋았다. 이 세 번째 보금자리로 옮겨오면서 우리 가족은 비로소 장롱 등 보통 가정들이 갖는 살림살이들을 최소한도로나마 갖추고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단칸방 시절에 비하면 형편이 피어도 한참 핀 셈이었다.


그러나 꼭대기층이다 보니 여름이면 옥상으로부터 전달되는 뜨거운 열기가 잠을 설치게 만들기 일쑤였고, 겨울이면 따뜻한 바닥과 찬 기운이 내려오는 천정 사이의 온도 차로 인해 여전히 딸들이 감기에 걸리는 일이 잦았다. 게다가 복도식 아파트에 동향 집이다 보니 집안이 너무 어두워서 대낮에도 거의 항상 불을 켜놓고 살아야 했다. 동굴이 따로 없었다. 결국 점점 자라나는 딸들에게 좀더 좋은 주거환경을 제공해줄 필요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이 세 번째 보금자리에서도 2년을 산 뒤 네 번째 보금자리 물색에 들어갔다.


그런데 네 번째 보금자리를 구하는 일은 '충동구매'로 집을 사버리는 대형사고를 초래하고 말았다. 지은 지 3~4년쯤 된 남향의 '신동급' 아파트 전세를 구한다고 절치부심 작정하고 일을 벌인 게 문제였다. 부동산 소개와 벼룩시장 광고를 총망라해 족히 수십 집은 발품을 팔고 다녔지만, 우리가 원하는 아파트는 찾을 수가 없었다. 전세로 나온 아파트들 중엔 통 마음에 차는 곳이 없었고, 집이 좀 마음에 든다 싶으면 집주인이 전세 아닌 매매만를 고집했다. 결국 지친 아내와 나는 '까짓거 몇 년 손가락 빨고 살 생각하고 그냥 질러 버리자!'고 의기투합해 버렸고, 전세를 구하려다가 덜컥 집을 사버리고는 대형사고를 저질렀다. 덕분에 다시 한번 은행한테 큰 신세를 져야만 했다.


오래도록 몸담고 살 새 보금자리를 구하면서 우리 집에는 이런저런 살림들이 늘어났다. 평소 아내가 집을 갖게 되면 꼭 장만하고 싶다던 소파도 하나 들여놨고, 엄마 아빠 침대에 더부살이해 살던 딸들을 위해 아이들용 이층침대도 들여놨다. 결혼 전 아내가 사용하던 TV도 마침 고장난 김에 한 대 새로 들여놨으며, 결혼 후 처음으로 집에 커튼이라는 것도 만들어 달았다.


이런 과정들을 거쳐 우리 가족은 처음으로 제법 집 같은 집꼴을 갖춘 집에서 비교적 안락한 삶을 살수 있게 됐다. 금수저를 물고 태어난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쯤은 결혼과 동시에 기본으로 갖춰지는 혼수 정도에 불과할지 몰라도, 우리 가족으로선 꽤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을 들인 땀의 결정체였다.


그 무렵 아내는 간혹 “우리가 남들만큼만 혼수 같은 걸 갖췄으면 그 고생도 하지 않았을 거고, 지금쯤은 널찍한 집에서 훨씬 여유있게 살고 있을텐데…” 하는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어쩌면 그랬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세상 일에는 모두 양면성이 있듯이,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좋은 것들도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것저것 하나씩 장만을 해오다 보니 집 안에 있는 것들 중 어느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다는 것, 그래서 문득문득 눈길을 마주칠 때면 그 물건들 하나하나가 우리 가슴을 뿌듯하게 만들어 준다는 것만 해도 그렇다. 그 안에 우리 가족만의 지난 얘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것 역시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시작한 사람들로서는 누리기 힘든 재미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여름엔 열어놓은 양쪽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들이칠 때면 뜨거운 양철지붕 위 고양이처럼 힘들었던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고, 겨울엔 바람 새는 곳 하나 없이 따뜻한 실내공기 덕분에 반팔 차림으로도 넉넉히 버티며 이불 혹은 전기장판과 일심동체가 돼 뒹굴던 시절을 생각하며 웃었다. 원래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은 결코 느낄 수 없는 우리 가족만의 작은 행복이었다.


비록 남들보다 조금 먼 길을 돌아 얼마간 고생스레 걸어오긴 했어도 늦게나마 안주할 수 있는 좋은 집을 마련했고, 먼 훗날 사랑하는 딸들에게 들려줄 엄마 아빠의 제법 꿋꿋하게 살아온 이야기도 집 안 곳곳에 묻어놨다. 이에 더해 우리 가족들 모두 건강하게 잘 먹고 잘 살아가고 있으니 이 정도면 결과적으로 꽤 괜찮은 결혼생활을 살아왔노라고 자부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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