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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Nov 08. 2021

레트로 열풍이 비껴 간 우리 아버지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60


'아버지' 하면 문득 떠오르는 이미지들 중 하나는 장롱 속에 고이고이 간직해 온 오래된 양복 한 벌이다. 대체 언제 샀는지 기억도 잘 안 날만큼 오래된 이 양복은 아버지 당신 못지않게 진한 아버지 냄새를 품고 있다.


대개 누구 결혼식이나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 때만 한번씩 햇빛을 보게 되는 이 양복은 아버지들에겐 일종의 예복이었다. 평소 양복 입고 출퇴근 하는 화이트칼라들은 논외로 치고 나머지 아버지들에게 있어 양복을 입는 날은 대개 '한껏 차려입는'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는 의미다.


그래서 양복을 입는 날의 아버지는 얼마간 낯선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했다. 우리 아버지 같지가 않고, 남의 옷을 빌려 입은듯 어딘가 부자연스러운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족히 몇 십 년은 됐음직한 오래된 옷이기에 더 그렇게 느껴지기도 했다. 날렵하고 맵시 좋은 요즘 옷들과는 달리 어딘가 투박하고 옛스러운 분위기가 묻어나서 더 그랬을 거다.


그 느낌이 일쑤 촌스러움으로 비춰지기도 해서 젊은 자식들은 질색팔색을 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집안 행사라든가 해서 자식들이 아버지와 동행해야 할 경우 그 정도가 한층 심했는데, 마치 다른 사람들에게 못 보일 꼴을 보이기라도 하는 것처럼 안절부절하곤 했더랬다.


그래서 자식들은 "그 양복 좀 이제 그만 입으세요. 새로 하나 장만해 드릴게요" 하고 성화를 부리기 일쑤였는데, 그러면 아버지들은 당신 취향이라시며 "뭐덜러 쓸데없는데 돈을 낭비하느냐?"고 손사래까지 쳐가면서 극구 마다하시곤 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밌는 건 최근 레트로 열풍이 불며 일견 촌스러워 보였던 아버지의 옷들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촌스러움은 고풍스럽다는 느낌으로, 시대에 뒤떨어졌다던 혹평은 '레트로'라는 이름 아래 최신유행으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 핵심인 우리 아버지들은 여전히 유행에 뒤쳐지고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고 있으니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레트로 유행에 취해 황학동 벼룩시장이니 구제옷 시장을 종횡무진 누비며 오래되고 낡은 옷들은 열심히 잘도 찾아 다니면서 우리 아버지들이나 그분들이 살아오신 인생에 대해선 어찌 그리들 무관심하고 무감동한지 모순도 이런 모순이 없다.


어쩌면 우리 집에도 하나쯤 남아 있을지 모르는 아버지의 빛바랜 양복을 찾아 장롱문을 한번 열어보고, 그 안팎에 깃든 세월의 발자취와 아버지의 희노애락이 녹아든 옛 향취에 코를 기울여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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