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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Nov 24. 2021

운전은 베테랑이지만 차는 잘 모릅니다

소소잡썰(小笑雜說)


"이놈의 남편네가 조신하지 못하게시리 간뎅이가 배 밖으로 외출을 하셨구만!"


개그우먼 김숙의 영향을 받아 언젠가부터 한 '걸크러쉬' 하는 아내가 내게 발끈하는 시늉을 하며 내뱉은 말이다. 앞서 내가 "이놈의 여편네가 조심성이라곤 1도 없어 가지고는 오늘 누구 손잡고 나란히 저 세상 갈려고 아주 작정을 했어?" 하고 겁도 없이 선제공격을 가하자 순간 버럭한 거다.


선제공격을 당한 것만으로도 잔뜩 약이 오를 판인데, 부아를 돋우느라 내가 오늘 부고 소식이 들려온 한 정치인 이름을 그 위에 양념처럼 슬쩍 곁들였더니 아내는 아주 약이 올라 죽을려고 했다. 어디 갖다 붙일 데가 없어서 그딴 데다가 자기를 갖다 붙이냐며 콧구멍까지 벌렁거리며 씩씩거렸다. 다른 때 같았으면 최소 등짝 스매싱 한 대 혹은 꼬집힘 정도는 각오해야 할 각이었다.


하지만 아내는 거친 숨결로 씩씩거리기만 했을뿐 다른 때완 달리 아무런 행동도 하지 못했다. 지은 죄가 있었기 때문이다. 무지한 탓이라곤 해도 겁도 없이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켜진 차를 끌고 장을 보러 다녀오는 '죽을 죄'를 지었던 거다. 운전을 한지는 20년이 넘는 베테랑이지만, 차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는 '차알못'이다 보니 아내는 타이어 공기압 경고등이 뭘 의미하는 지도 몰랐다고 했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퇴근해 돌아와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내가 뭔가 켕기는 표정으로 "차 계기판에 무슨 빨간불이 들어왔는데 괜찮은 건가 모르겠네요" 하고 말했다. 심상치 않은 예감을 받은 나는 곧바로 주차장으로 달려 내려갔다. 시동을 걸고 살펴보니 타이어 공기압이 많이 부족하다는 경고등이 들어와 있었다. 아마 타이어에 못이라도 박힌 모양인데, 그렇다 해도 타이어 공기가 그렇게 빨리 빠지는 건 아님을 알기에 동네 카센터라도 갈까 하고 천천히 차를 움직이며 정확한 상태를 살펴봤다.


그 결과 왼쪽 앞바퀴가 거의 운행이 힘들 정도로 심각한 공기압 부족 상태임을 알게 됐다. 내려서 살펴보니 바퀴 휠이 거의 바닥과 맞닿기 직전이었다. 자칫 잘못했다간 펑크 난 부위를 중심으로 타이어가 찢어지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겠단 판단이 들었다. 그래서 그 즉시 차를 멈춰세우고 보험사 긴급출동 서비스를 부르는 한편 아내에게 언제부터 이랬는지 물어봤다.


아내는 뭔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챈 듯 풀죽은 목소리로 "장 보러 나가는데 차 계기판에 못 보던 빨간불이 켜졌길래 겁이 나서 얼른 다녀온 뒤 주차장에 차를 세워뒀다"는 거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등골이 서늘해졌다. 밤 사이 내린 비 위로 낮 동안에도 간헐적으로 비가 내려 도로가 젖어있는 상황이었는데, 펑크 난 차를 끌고 돌아다녔다는 게 아찔해서였다. 다행히 집 근처 가까운 슈퍼마켓에 다녀온 모양이긴 했지만, 큰길로 나가 씽씽 달리다가 급브레이크 밟을 상황이라도 발생했으면 자칫 큰 사고가 날뻔 했다.


물론 아내 입장에선 그런 위험은 전혀 예상치도 못 했을 거다. 하지만 몰랐다고 해서 사고가 "아이쿠, 그러셨어요!" 하며 순순히 피해가주진 않는 법이다. 그래서 나는 짐짓 화난 표정으로 아내에게 모질게 쏘아붙여 줬다. "이놈의 여편네가 조심성이라곤 1도 없어 가지고는 오늘 누구 손잡고 나란히 저 세상 갈려고 아주 작정을 했어?" 하고 말이다. 계기판에 빨간 경고등이 켜졌을 땐 일단 차량 운행을 중지하고, 문제를 해결한 뒤 움직여야 한다는 진지한 충고와 함께였다. 병원 혹은 영안실 신세를 지고 싶지 않다면 말이다.


아내는 "이놈의 남편네가 조신하지 못하게시리 간뎅이가 배 밖으로 외출을 하셨구만!" 하고 겉으론 씩씩거렸지만, 지은 죄가 있는지라 이내 내 눈길을 피했다. 선제공격을 당하고도 등짝 스매싱이나 꼬집기 공격을 자제했으니 그 정도면 아내로선 최대한 잘못을 인정하고 미안하다는 표현을 한 셈이다. 아마 속으론 많이 뜨끔하고 등골마저 서늘했을 거다.


주변을 둘러보면 운전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 외엔 차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는 운전자들이 꽤 많다. 심지어 내가 왜 차에 대해 알아야 하냐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운전하는 모든 사람이 전문가 수준으로 차에 대해 알 필요는 없지만, 차 계기판에 주차브레이크 표시 외에 뭔가 빨간 경고등이 뜨면 즉시 차 운행을 중지하는 정도 상식은 갖췄으면 좋겠다. 그 경고등의 의미인즉 '이 상태로 계속 달리면 나 죽을지도 몰라요. 그럼 결국 너도 죽으세요!' 하는 협박이기 때문이다. '공갈'이 아니라 진짜 죽음을 야기할 수도 있는 무서운 협박이다.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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