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표현이라곤어쩌다퇴근길에군고구마한봉지사다가멋대가리없이내미는게거의전부인아버지를보며자란내게 미국 드라마에 등장하는 미국부부들의거침없는애정표현은적지않은문화충격이었고, 완전한신세계였다.
같은부부임에도불구하고왜그럴까, 왜그렇게 문화적차이가나는 걸까궁금했다. 그래서곰곰생각해본결과미국식자유연애와한국식중매결혼이그같은차이를가져온게아닐까싶었다. 자유연애가주류를이뤄온미국에서는결혼이란힘든관문을통과하기위해선 상대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적극적인 애정 공세가필수적이었던반면, 중매결혼이일반적이었던 과거 우리나라에선결혼당일에야 부부가 겨우얼굴을 마주보는경우가대다수였다.
과정이이렇듯판이하게다르다보니부부간에애정을표현하는방식이나깊이도다를수밖에없었다. 오랜연애끝에좀더오래같이있고싶어결혼한부부는애정이점점깊어갈수밖에없는사이였고, 생판모르던두사람이별다른선택권없이부부로합쳐진우리네 부부는 그시작부터어색하고 어딘가 거리감이있을수밖에없었다.
'허니(Honey)', '달링(Darling)'같은서구식 꿀 떨어지는애정표현을우리아버지들에게선 찾아보기힘들었던이유가바로여기있었다. 그런데이런과정이나심리적배경은무시한채 "한국남자들은너무애정표현이인색해"라고비난하는사람들이있다. 우리아버지들입장에선 비교선상이 다른 잘못된 비교고, 많이억울할수밖에없는잘못된비난이다.
장미꽃 한 다발을 곁들여 "자기야, 사랑해!" 하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지 몰라도 우리 아버지들도 딴엔 열심히 사랑 고백을 해왔다. 이를테면 직장에서 힘들거나 안 좋은 일이 있을 때 술 한 잔 걸치고 군고구마나 붕어빵 한 봉지를 들고 오는 게 그런 것들이다. 그 봉지 안에는 '없는 살림에 늘 고생하는데 이거라도 먹고 힘내길 바래', 혹은 '세상살이가 쉽진 않지만 당신 덕분에 힘을 내고 있어. 고마워!'라는 진한 사랑 표현이 담겨 있다.
끓는물에스프를풀어 몇 분만 끓이면 일견하기에그럴듯한맛과 색을이끌어내는인스턴트식품같은사랑이아니라, 잘 끓지도 않는 무쇠 가마솥에 열시간, 스무시간깊게우려내깊고진한맛을내는곰탕같은사랑이바로우리대한민국아버지들식의사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