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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Dec 06. 2021

완전군장쯤은 '껌 씹어' 드셨던 원조 강철부대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64

가진 거 없고 배운 거 없는 사람들은 하루 세 끼 밥 먹고 사는 것조차 버겁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 오래지도 않은 한 5~60년 전쯤, 딱 우리 아버지 세대 때가 그랬다. 자기 한 입 때우기도 쉽지 않았던 그 시절, 어찌어찌 결혼을 하고  이러구러 예닐곱이나 되는 자식들까지 낳고 보면 먹고 산다는 건 한 마디로 전쟁이었다.


가진 거라곤 남달리 튼튼한 몸뚱아리 하나 뿐이었던 이분 아버지가 선택한 방법은  그래서 남들보다 더 힘들게, 독하게 일하자는 것이었다. 그렇게 선택한 직업이 바로 뻥튀기 장사였다.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엔 지금과는 달리 그 흔해빠진 리어카 하나 구하기도 힘들어 지게에 짊어진 채 십리, 이십리 길을 걸어 마을에서 마을로 돌아다녀야 했기 때문에 아무나 섣불리 뛰어들 수 있는 사업이 아니었고, 기계값 역시 쌀 몇 가마분에 달하는 고가여서 쉽게 엄두 내기도 힘들었다.


뻥튀기 기계 세트 중 비교적 가벼운 편인 그물망 하나만 해도 무려 15kg 가까이 나갈 정도였다.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기계 본체까지 함께 짊어지면 족히 쌀 한 가마니 무게에 필적할 정도여서 여름 같은 더운 날은 물론 겨울 같은 추운 날도 입에서 단내가 나곤 했다. 그 힘들다는 군대 완전군장 무게가 30kg 안팎이니 그 힘듦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거다. 아마 집에서 제비 주둥이 같은 입을 벌린채 아버지 오기만 기다리는 어린 자식들만 아니었음 너무 힘들어서 진작에 때려치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직한 땀은 배신을 하지 않는 법. 덕분에 이버지는 예닐곱이나 되는 자식들을 잘 키울 수 있었다. 또 그 자식들이 잘 자라 일가를 이룬 덕분에 지금은 열 서너 명이나 되는 손주들 재롱까지 볼 수 있게 됐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만큼 살았으면 잘 산 인생 아니냐며, 이제 더 이상은 바랄 것도, 아쉬운 것도 없어 정든 시장터에서 여생을 즐기고 계시노라며 아버지는 활짝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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