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소소잡썰

"동생, 살아있어줘서 고맙다!"

소소잡썰(小笑雜說)

by 글짓는 사진장이


'어린 동생이 짓궂은 장난을 쳐왔다. 화가 나서 혼을 냈더니 엄마에게 이른다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뒤늦게 걱정이 돼 찾아나선 언니는 한참만에 어렵게 동생을 찾았다. 이때 그 언니가 '나'라면 무슨 말을 했을까?'


우리집 쌍둥이 딸들이 여덟 살 때 일이다. 하루는 가정학습지에 위와 같은 예제를 곁들인 주관식 문제가 출제됐다. 앞뒤 문맥상으로 봤을 때 형제 간엔 서로 우애있게 지내야 하고, 잘못을 했을 때는 솔직히 사과해야 한다는 교훈을 심어주기 위한 문제인 듯했다.


이 문제에 대해 큰딸은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앞으로는 사이 좋게 지내자"는 이른바 모범답안을 써냈다. 하지만 평소 좀 엉뚱한 구석이 있는 작은딸은 전혀 예상치도 못한 기상천외한 답을 써냈다.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답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 기상천외한 답 때문에 아내와 나는 잠시 고민 아닌 고민을 해야만 했다. 비록 문제 출제자가 원하는 모범답안은 아니었지만, 곰곰 따져 보면 나름 말이 되는 답이라 판단(딸바보 아빠에 더더더 딸바보 엄마라 그런 건 절대 아니다)됐기 때문이다. 어린 동생이 혼자 몸으로 험한 바깥세상에 나가 별 사고 없이 잘 돌아왔으니 언니 입장에선 "살아 있어줘서 고맙다"는 답 또한 그리 경우에 어긋나는 건 아니다 싶었다.


결국 아내와 나는 이 답에 동그라미를 쳐주기로 했다. 문제 출제자가 의도했던 모범답안을 비껴가기는 했을망정 작은딸의 답에는 집 나간 어린 동생을 염려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충분히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아닌 부모 입장에선 그 마음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이래서 교육은 교육 전문가인 선생님에게 맡겨야 한다)됐다.


그 뒤 큰딸과 작은딸이 다른 문제들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며 아내와 나는 우리의 그 같은 판단이 옳았다는 믿음을 갖게 됐다. 교육 전문가인 선생님 관점에서 봤다면 "뭐 이런 제 멋대로인 부모들이 다 있어?" 하고 한숨을 내쉬거나 혀를 쯧쯧 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린 딸들에게 더 중요한 건 문제 정답 하나를 더 맞추는 게 아니라 따뜻한 인성을 갖추는 거라 생각했다.


'엄마는 ○○이가 더 이상 자라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더 자라면 무거워서 안아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때 '나'라면 뭐라고 말했을까?'


이 문제의 정답이 무엇이었는진 지금 기억나지 않지만, 작은딸은 이번에도 "내가 안아주면 되지"라는 정답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답을 적어냈다. 문제 출제자가 원하는 답은 물론 아니었다. 하지만 사람에 대한 따뜻한 배려와 사랑으로 충만한 마음을 담아냈다는 점에서 부모인 우리 입장에선 정답 이상으로 더 좋은 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손을 잡고 가면 되지"라는 답을 적어낸 큰딸도 마찬가지로 만족스러웠다. 굳이 안아주는 행위가 아니더라도 손을 잡는다든가 팔짱을 끼는 식으로 서로의 체온과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 두 딸 모두 기대했던 것 이상의 좋은 답을 써냈다. 솔직히 어른인 내가 써낸다 해도 그보다 좋은 답을 써낼 자신이 없을 정도였다.


두 딸의 문제 풀이 과정을 지켜보며 나는 세상에 '정답'이라는 건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문제 해결에 좀 더 도움이 되거나 세상 사람들이 보편적이라 생각하는 답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것만이 이 문제의 정답이라 말할 수 있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성세대들이 만들어 놓은 틀 안에 갇힌 사고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어린 두 딸 덕분에 내 안의 틀 하나가 깨져 나간 거다.


우리들은 종종 누구에게 왜 물려받았는지도 잘 모르는 온갖 정답지들을 들고 자녀들에게, 혹은 후배들에게 이건 이렇게 해야 한다, 저건 저렇게 해야 한다고 강권하곤 한다. 예를 들면 1 더하기 1의 정답은 두번 생각할 필요도 없이 2다라는 고정관념, 대한민국에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을 가야만 성공할 수 있다는 성공공식도 다 그런 것들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수학적인 덧뺄셈에선 그게 정답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세상엔 1 더하기 1이 2가 아닌 경우가 허다하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일류대학을 나왔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경우도, 공부는 못했지만 예체능적 재능이나 장사 수완이 뛰어나 성공하는 경우도 꽤 많다. 각자의 성격과 가치관, 신체적 정신적 능력, 인적 물적 자원 등 수많은 변수들이 존재해 1, 2차 방정식 정도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게 우리네 인생이고 보면 4지선다 정도 수준의 보기 몇 개로 정답을 찾으려 드는 건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보면 각종 시험문제에 대해 기상천외한 답을 써낸 초등학생들 얘기가 종종 나온다. 언젠가 봤던 <곤충을 세 부분으로 나누면 어떻게 되나요?>라는 자연 문제에 대해 <머리, 가슴, 배>라는 정답 대신 <죽, 는, 다>라고 써낸 초등학생 답도 그 중 하나다. 선생님들껜 좀 죄송한 얘기일지 몰라도 나는 우리나라 학교에서 이런 오답들이 좀 더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정답은 물론 정답으로서 가치와 존재 이유가 있겠지만, 오답들이야말로 아이들이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방편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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