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놈일 때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10
코로나 사태 극복을 위해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전 국민에게 지급하자
소고기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는 뉴스가 장안의 화제가 됐었다.
지원금을 받아 모처럼 가족이 함께 소고기를 먹었다는 후기들이 인터넷을 떠돌고,
급기야 갑작스런 수요 증가로 인해 소고기값마저 올랐다는 뉴스까지 나왔다.
이런 소식들을 접하며 나는 문득 월급날이면 '쇠고기를 끊어' 오시던 아버지 모습을 떠올렸다.
몇푼 안 되는 월급 쪼개 쓰느라 고기 반찬 한번 변변히 못해 먹이는 자식들이 못내 눈에 밟혔던지
월급날이면 아버지는 시장 정육점에 들러 소고기 반 근내지 한 근을 '끊어' 오시곤 했다.
갓 끊은 소고기를 신문지로 대충 둘둘 말아 핏물마저 배어나오는 상태로 가져오시곤 했는데,
그러면 어머니는 미리 준비해 둔 무를 숭숭 썰어넣은 뒤 맛난 소고기국을 끓여내곤 했다.
먹을 입이 워낙 많다 보니 소고기국이라 해봐야 고기보단 무가 더 많았고,
힘들게 일하시는 아버지 몫으로 한 국자 퍼드리고 나면 그나마 남는 게 별로 없었지만
한 달에 한번 구경할까 말까 한 귀한 고기국이라 나는 코를 박은채 열심히 숟가락질을 하곤 했다.
그런 내 모습이 안스러워 그랬는지 막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한참 그렇게 먹다 보면
아버지는 당신 국그릇에서 실한 건더기 몇 개를 추려 슬그머니 내 국그릇에 넣어주시곤 했다.
어머니는 "에구, 가장이 잘 드셔야 하는데..." 하며 짐짓 질색하는 시늉을 하시곤 했지만,
굳이 그걸 말리려곤 하지 않았다.
기껏해야 "우리 막내, 크면 정육점집 딸내미한테 장가 보내야겠네" 하는 싱거운 농담을 하며
좋아하는 고기반찬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에둘러 표현하곤 했다.
이때 등장하곤 하던 단골 레파토리가 "그나마 우리 땐 소고기국에 쌀밥 한번 배부르게 먹는게 소원이었다"는,
보릿고개가 엄존했던 그리 오래지 않은 옛날 아버지의 어린 시절 얘기였다.
그런 시절을 온몸으로 부딪치며 삼시 세끼 밥 굶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만큼 살아내셨고
달에 한 번 월급날이면 소고기국을 끓여먹는 작은 호사도 누리게 됐으니 정말 고맙지 않냐 하셨다.
코로나 사태로 재난지원금이 전 국민에게 지급되자 소고기 소비가 급증했다는 소식을 접하며
문득 내가 아버지를 떠올린 것도 소고기에 얽힌 이런 추억 때문이었다.
아마 다른 많은 아버지들도 그런 추억들을 떠올리며 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를 사 집에 들어들 가셨을 거다.
코로나 사태로 경제가 많이 어려워지긴 했지만, 소고기국 한 그릇 배불리 먹는게 소원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지금 어려운 건 어려운 것도 아니라며, 충분히 이겨낼 수 있을 거라 스스로를 다독거리면서 말이다.
아마도 요즘 젊은 아빠들이라면 재난지원금 100만원을 받아 들었을 때 소고기를 먼저 떠올리진 않았을 거다.
영어인지 불어인지 그 이름조차 생소한 전 세계 맛난 먹거리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굳이 소고기가 무슨 소용일까.
하지만 소고기가 이 세상에서 가장 맛나고 귀한 음식이라 생각하며 평생을 살아오신 우리 아버지들은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사랑하는 식구들 얼굴을 떠올리며 '쇠고기를 끊어' 집으로들 가셨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