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을 나와 휴게소 주차장 쪽으로 걸어오는 아내와 딸들을 마중하기 위해 내가 주차라인을 천천히 빠져나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굉음에 가까운 요란한 엔진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뭔가가 내 차 오른쪽 앞바퀴 쪽을 격렬하게 충돌해왔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를 승용차 한 대였다.
어찌나 무서운 기세로 달려왔던지 문제의 승용차는 내 차를 들이받고도 멈칫하는 기색조차 없이 맹렬한 기세로 계속 앞으로 달려나갔다. 그리고는 앞쪽에 놓여있던 20여 개쯤 되는 계단을 들이받으며 반너머 치고 올라갔고, 그 충돌 여파로 차 앞부분이 박살난 채 겨우 멈춰섰다. 천만다행하게도 화장실에 다녀오던 아내와 딸들이 계단으로 막 들어서기 직전에 벌어진 일이었다.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한 나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잠시 멍한 상태로 운전석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아내와 딸들 안위에 뒤늦게 생각이 미쳐 운전석을 박차고 차에서 뛰어 내렸다. 사고 원인이나 박살난 차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가족들의 안위가 우선이었다. 다행히 좀 놀란 걸 빼곤 아내와 딸들은 아무 데도 다친 곳이 없었다. 사고를 친 승용차 운전자도 다친 곳은 없어 보였다.
그로부터 얼마 후 보험사 직원들과 경찰이 현장조사를 나왔다. 이때까지 우리에게 미안하단 말 한 마디 없던 사고차 운전자는 "저는 아무 잘못도 없어요.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차가 갑자기 급발진한 거에요. 저는 정말 억울하다구욧!" 하고 보험사 직원들과 경찰을 상대로 책임 회피에만 급급했다. 자기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으니 피해자인 우리에게 미안할 일도 없다는 어조였다.
이때 아내가 피식 웃음을 터뜨리더니만 "뻥치시네 ㅋ" 하고 조용히 내게 말했다. 어떻게 아냐고 내가 눈짓으로 묻자 아내는 "사고 난 직후에 저 아줌마 옆을 지나왔는데, 그때 아줌마가 자기 남편한테 하는 얘길 들었거든요" 하고 답했다. 알고 보니 문제의 사고차 운전자는 남편이 잠시 뭘 사러 간 사이 반려견을 품에 안은 채 주차장 통로에 차를 세우고 기다리고 있었고, 열린 운전석 창문 사이로 갑자기 반려견이 뛰쳐나가려 하자 허둥대다가 차 엑셀레이터를 사정없이 밟아버린 거였다.
화가 난 나는 보험사 직원들과 경찰에게 이 같은 사실을 낱낱이 알려줬다. 반려견을 품에 안은 채 운전대를 잡은 아줌마의 무책임한 행동에 화가 났고,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긴커녕 거짓말로 죄없는 차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철면피함에도 화가 났다. 그 무책임하고 철면피한 행동 때문에 누군가 소중한 생명을 잃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형사처벌이라도 받게 만들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급발진을 주장하던 가해자 차량. 우리 차와 계단을 잇따라 들이받느라 앞부분이 완전 박살났다
그 일을 겪고 난 뒤 나는 반려견을 품에 안은 채 운전하는 사람들을 보면 조건반사적으로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병증 아닌 병증을 앓고 있다. '저러다가 개가 돌발적인 행동이라도 하면 허둥대다 또 액셀레이터를 때려밟을 놈의 인간들'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자기들은 반려견이 너무 사랑스러워 차마 품에서 떼놓질 못하겠는 모양이지만, 그 행위로 인해 큰 피해를 입은 전력이 있는 우리 가족 입장에서 보면 육두문자가 튀어나올 만큼 화가 나는 행동이었다.
"우리 개는 순해서 사람 안 물어요!"라고 주장하는 개주인들이 종종 있다. 같은 의미로 "우리 개는 얌전해서 차 타면 사람처럼 의젓하게 앉아있어요"라고 주장하는 개주인들도 있다. 개소리다. 평소 얌전하던 개들도 어떤 위험상황을 마주치면 갑자기 야수로 돌변할 수 있다. 차를 타고 달리다보면 예기치 못한 위험한 상황과 마주칠 수도 있는데, 그런 공포스런 상황과 마주쳤을 때 반려견이 무슨 돌출행동을 해 개주인이 탄 차를 어떤 위험상황으로 내몰지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일이다.
반려견을 너무 귀애하는 나머지 자식 대하 듯 아끼고 사랑하는 것까진 좋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른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들거나 위험에 노출시키는 건 반사회적인 범죄행위라고 생각한다. 세상엔 덩치가 크든 작든 개와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하고,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 봤을 때 목줄조차 없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개를 마주치는 건 폭력 앞에 노출된 상황이나 마찬가지다.
반려견을 품에 안고 운전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도로교통법 제39조 5항에 '모든 차의 운전자는 영유아나 동물을 안고 운전 장치를 조작하거나 운전석 주위에 물건을 싣는 등 안전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상태로 운전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명백히 규정돼 있기도 하거니와, 우리 가족이 경험한 사례처럼 개가 갑자기 돌발행동을 할 경우 끔찍한 교통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교통사고라도 발생하게 되면 품에 안은 반려견이 운전자와 핸들 사이에 끼어 크게 다칠 수도 있다. 그 사고가 에어백이 터질 정도로 큰 사고라면 품에 안고 있던 그 잘못된 행위로 인해 자칫 그토록 귀애해 마지않는 반려견이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반려견을 품에 안고 운전하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제발 깨닫고, 운전할 땐 잠시 품에서 떼어내 운반용 케이지 같은 곳에 안전하게 넣어 데리고 다니라고 권하고 싶은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