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23. 2022

50대 아저씨의 VR안경 입문기

소소잡썰(小笑雜說)

소소잡썰(小笑雜說)

"VR안경 렌즈가이드 좀 맞추러 왔는데요..."

"어이쿠, 저희가 이렇게 나이 드신 분은 처음이라 어떻게 맞춰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말투로 미뤄 안경사도 당혹스러워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더 당혹스러운 건 나였다. 50대 중반이란 나이가 VR안경 같은 걸 사용하기엔 너무 늙은 건가 하는 생각이 뒤늦게 들어서다. 내 나이가 한층 더 무겁게 느껴지면서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좀 퉁명스레 "여기가 우리 ○○시에 딱 2개 있다는 렌즈가이드 맞춤 전문점이라 듣고 온건데 아닌가요?" 하고 되물었다. '나름 시대를 앞서가는 얼리어답터 안경원이란 얘길 듣고 찾아온 건데 그건 과장된 소문이었던 거니?' 하는 불만을 내포한 물음이었다.


그러자 안경사는 당혹스러우면서도 불만스런 내 마음을 알아차린 듯 "그 안경원 맞습니다, 선생님. 다만 그동안은 젊은 분들만 오셔서요. 그분들은 다 먼 게 잘 안보이는 경우라 원시용으로 제작해 드렸는데, 아시다시피 나이 드신 분들은 먼 건 잘 보이고 가까운 데가 잘 안 보이시거든요" 하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VR안경은 바로 눈 앞에 스크린을 펼쳐 보여주긴 하지만, 사람 눈에는 먼 거리를 보는 걸로 인식되기 때문에 돋보기가 아닌 원시용 렌즈를 사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데 선생님은 가까운 데가 잘 보이시는지, 아님 먼 데가 잘 보이시는지요?" 하고 물어왔다. 이에 내가 가까운 데가 잘 보이고 먼 데는 잘 안 보인다고 대답하자 그제서야 안도하며 "그럼 다른 분들과 똑같이 원시용으로 제작해 드리면 되겠네요" 하고 서둘러 렌즈를 제작하러 작업실로 들어갔다.


브런치 이웃작가님이 쓴 <오큘러스2, 두 번 사세요! https://brunch.co.kr/@siseon/195> 글을 보고 난 뒤 나는 문제의 VR안경 제품에  급관심이 생겼다. 이후 인터넷 서핑을 통해 사용기를 찾아보니 3D 영화감상이나 게임은 물론 운동에도 매우 효과적이라고 하는 평이 많길래 대뜸 질러버리고야 말았다. 코로나 시국인데다 겨울이다 보니 집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집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이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간절했던 때라 더 쉽게 혹했던 것같다.


처음 이 VR안경을 살 때까지만 해도 사서 머리에 뒤집어 쓰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오케이일 줄 알았다. 하지만 21세기형 신문물에 대해 다소 서툰 편인 50대라 그런진 몰라도 뭐 하나 쉬운 게 없었다. 처음 이 VR안경을 쓰는 과정만 해도 그랬다. 안경을 쓴 상태로 뒤집어 쓰려다 보니 안경테가 걸렸다. 몇 번 시도해 보니 자칫 잘못하면 안경테가 부러질 것 같았다. 그래서 안경을 벗어 VR안경에 먼저 집어넣은 뒤 얼굴만 밀어넣는 편법을 생각해냈다. 안경을 낀 상태로 뒤집어 쓰는 것보단 한결 간섭현상이 덜해졌다.


하지만 그 방법엔 결정적인 문제점이 하나 있었다. 머리에 뒤집어 쓰는 과정에서 VR안경 내 렌즈 부분과 내 안경알 부분이 부비부비 직접 맞닿는다는게 그것이었다. 한두 번 쓸 것도 아닌데 계속 그런 식으로 사용하다간 VR안경 렌즈 부분과 내 안경알이 서로 부비적거리느라 적지않은 스크래치가 발생하고, 결국은 둘 다 상처 투성이가 될 것 같았다.


이에 나는 'VR안경 쓰는 안경잡이가 나 하나일리는 없다'는 생각으로 인터넷 폭풍검색을 시작했다. 뭔가 해결방법이 분명 있을 거란 생각이었고, 내 생각은 정확했다. 나와 같은 문제를 앞서 겪은 수많은 사용자들이 존재했고, 그들의 절실한 필요는 <렌즈가이드>라는 실용적인 파생제품을 이미 세상에 탄생시켰던 거다. 안경을 쓰고 VR안경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니라 VR안경 내 렌즈부분에 안경틀 같은 걸 설치해서 내 시력에 맞춘 안경을 씌워주는 방식이었다.


문제 해결방식은 찾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지방도시가 서울 같은 대도시에 비해 각종 인프라가 많이 떨어진다는 게 그것이었다. <렌즈가이드>야 인터넷쇼핑을 통해 구한다 쳐도 그 핵심내용물인 돗수가 있는 렌즈를 제작해 줄 안경원이 있느냐가 문제였다. 그래서 다시 한번 인터넷 폭풍검색을 통해 관련 내용을 검색해봤는데, 발가락 끝에 살짝 걸리는 정보를 고구마 줄기 캐듯 쫓아가보니 회원수가 12만 가까이 되는 인터넷카페가 나왔다. 그리고 그곳에서 우리 도시에 딱 2곳 있다는 VR안경용 렌즈 작업이 가능한 안경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정말 감사하게도 우리 집에서 차로 5분도 채 안 걸리는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름 어렵다면 어려운 과정을 거친 끝에 내 VR안경은 비로소 완전체가 됐다. 덕분에 최근 나는 VR안경을 통한 신세계를 한창 만끽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VR안경용 인기게임 중 하나인 일레븐 테이블테니스를 가장 즐겨하고 있는데, 진짜 탁구장에 있는듯한 그래픽 환경과 실제로 탁구공을 치는 듯한 생생한 감촉에 늘 찬탄하곤 한다. 심지어 커트와 드라이브 같은 탁구 기술들까지 실제처럼 구현을 해놓은 까닭에 이런 기술들에 능한 상대를 만나면 까다로운 구질에 대응하느라 진땀을 흘리기도 한다.


한 가지 재미 있었던 건 해당 탁구 게임 사용자 중 하나가 남긴 질문과 다른 사용자의 답변이다. 한 사용자가 "진짜 탁구장에서 탁구를 치는 것처럼 실감이 나서 좋네요. 다만 운동량은 진짜 탁구를 치는 거보단 많이 떨어지는 느낌인데 왜 그럴까요?" 하는 질문을 올리자 다른 사용자가 "그건 공을 주으러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실제 탁구에선 탁구 치는 것보다 공 주우러 다니느라 더 많은 운동이 되곤 합니다"라고 답을 했다. 그러자 많은 사용자들이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고 적극 공감을 표하는 바람에 사용자들 모두가 같이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VR안경 하나 덕분에 나는, 우리는 집 안에 탁구장과 볼링장 등 각종 운동시설들과 영화관 같은 문화공간을 갖고 됐고, 360도 VR 영상을 활용해 생생한 국내외 여행 체험까지 할 수 있게 됐다. 아마도 앞으론 더 한층 발전한 VR안경류 첨단 신제품들이 하루가 멀다고 쏟아져 나올 게 확실하고, 그만큼 우린 집 안에 앉은 채로 더 많은 것들을 경험하고 누릴 수 있게 될 거다.


하지만 거기엔 내가 VR안경용 탁구 게임에서 경험한 것처럼 공을 주으러 가는 것같은 사실적인 과정들은 많은 부분 생략되고 없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권투 게임에서 아무리 많이 두들겨 맞아도 아프지 않은 것처럼 아무리 잘 만든 3D 4D 가상현실이라 할지라도 현실과는 많이 동떨어진 상상 속 세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 경이로우면서도 이로운 부분들은 십분 취하되 너무 깊이, 무분별하게 빠져들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매거진의 이전글 앞뒤좌우 동료들 모두 코로나에 걸렸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