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짜장면이 싫다고 말하실 기회조차 없었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14

by 글짓는 사진장이


우리 어린시절에는 짜장면이 특별한 날에만 먹는 아주 특별한 음식이었다.

라면 하나 오롯이 먹는 것도 아까워 국수를 한 웅큼이나 넣어 함께 끓여먹곤 했던 시절이라

그보다 몇 곱은 비싼 짜장면 한 그릇 먹기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나 다름 없었다.


짜장면을 먹을 수 있는 날은 학교 졸업식 때 같은 아주 특별한 날로 국한됐었다.

국민학교로 따지면 6년, 중·고등학교로 따지면 3년에 한 번 꼴로 밖엔

짜장면을 먹을 기회가 없었다는 얘기나 다름 없다.


그렇게 한 번 먹기가 쉽지 않은 귀한 음식이다 보니 어쩌다 먹을 기회가 생기면

어린 우리들은 그릇에 코를 박고 정말 열심히 열심히 짜장면을 먹어대곤 했다.

마치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다시는 짜장면을 못 먹을 것처럼 결사적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니는 두어 술 뜨다 말고 슬그머니 젓가락을 내려놓으시며

저 유명한 지오디의 노래 '어머니' 가사처럼 "밀가루라 그런가 짜장면을 먹음 통 소화가 안 되네" 하며

걸신 들린 듯 짜장면을 쳐먹고 있는 우리 쪽으로 당신 그릇을 슬그머니 밀어놓곤 하셨다.


그래도 그나마 어머니는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다.

자식놈 졸업한다는 이유 정도로 휴가를 내는 건 용납되지 않던 당시 사회분위기 탓에

아버지는 졸업식이나 졸업식 뒤 짜장면파티에 참석할 기회조차 아예 없었으니 말이다.


우리 아버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민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단 한번도 아버지는 내 졸업식에 참석 못 하셨다.
가족들과 함께 짜장면을 비벼먹을 기회 또한 갖지 못 하셨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선 회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웃기는 짜장같은 논리가 강요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간혹 장터 같은 곳에서 맛나게 짜장면을 드시고 있는 아버지들을 볼 때면

'밥벌이 하느라 바빠 그 옛날 못 드셨던 걸 뒤늦게 드시는구나' 싶어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졸업식 같은 자식놈들과의 소중한 순간들을 짜장면과 함께 비벼 드시지 못한 세월들이

어느날 문득 보면 가족들 가운데 홀로 외롭게 서있는 아버지들 모습 위로 오버랩돼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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