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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25. 2022

쌀 팔러, 돈 사러 간다던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82

어린 시절, 아버지나 또래 친구분들이 걸핏하면 입에 담곤 하던 "쌀 팔러 간다"는 말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비록 변두리긴 했어도 내가 살던 동네가 농촌이 아닌 서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아버지는 물론 주변 분들 중에도 쌀 농사 짓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는데 어떻게 쌀을 팔러 가나 싶어서다.


"쌀 팔러 간다"는 말과 함께 아버지들이 즐겨 쓰던 또 다른 말 중 하나는 "돈 사러 간다"였다.

비록 어리긴 했어도 모든 거래의 중심은 '돈'이라 알고 있던 내게 돈을 사러 간다는 말은 많이 낯설었다.

돈은 어떻게, 뭘로 사는 걸까 정말 많이 궁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나이를 좀 먹고, 아버지 마음이란 걸 조금씩 이해하게 되면서 나는 알게 됐다.

쌀을 팔러 간다 또는 돈을 사러 간다는 건 곧 곤궁한 집안 형편을 들키고 싶지 않은 아버지들식 화법이라는 걸 말이다.

집 안에 쌀이 떨어진 걸 마치 쌀이 넘쳐나 내다 팔아야 한다는 듯 둘러대고,

집 안에 돈이 떨어진 걸 그까짓 거 밖에 나가 사오면 되지 않느냐는 식으로 표현한 거였다.


그래서 월급을 받은 날 혹은 한두 되쯤 되는 쌀을 누런 봉투에 담아 집에 돌아오는 날이면

아버지들의 발걸음은 유난히 가벼웠고, 얼굴 표정은 평소보다 많이 여유로웠다.

돈을 사왔고, 쌀도 팔아 왔으니 아버지로서의 책임과 도리를 어지간히 했다는 안도감이었을 거다.


풍요로움이 넘쳐나는 지금 시대엔 상상하기조차 힘든 일이지만

분명 그런 배고프고 가난했던 시절이 불과 얼마 전까지 이 땅 위에 있었다.

그리고 그런 시절을 정말 가슴 아프고 절절하게 살아내신 우리 아버지들이 있었다.


그 기반 위에 서 있음을 우리는 기억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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