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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07. 2022

비오는 날은 포장마차 쏘주가 그립다

소소잡썰(小笑雜說)

누군가의 장례식장에 가는 꿈을 꾸다가 새벽잠을 깼다.

머리맡에 놓인 핸드폰 시계를 보니 3시30분이었다.

출근 기상시간까진 2시간 넘게 남았기에 다시 잠을 청했지만, 한 번 깬 잠은 좀처럼 원위치를 허용치 않았다.

50대로 접어들면서 가끔 한 번씩 겪어온 잠 못 이루는 새벽이 또 시작된 거다.


텅빈 거실로 나가 두어 시간을 혼자 몸부림치다 출근길에 나섰다.

지하주차장을 나와보니 비가 내렸다. 봄비 치고는 제법 많은 양이었다.

족히 수천번은 오갔던 익숙한 출근길이었지만,  번들거리는 도로와  조금씩 비틀거리는 차들 때문에 나도 모르는 새 운전대를 잡은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그러고 보니 평균속도도 평소보다 10-20km쯤 줄어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는 건 아무래도 생각이 많아진단 거고, 그에 비례해 겁도 많아지는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회사 주차장에 무사히 잘 도착해 작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시동을 끄는 순간 달릴 땐 잘 들리지 않던 빗방울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두두둑 두두두둑 둑두두두두..."

정박과 엇박이 뒤섞여 차 지붕과 보닛을 신나게 두들기는 소리에 잠시 동작을 멈췄다.

빗소리에 젖어본 게 언제였더라 싶으면서 아내와 걸핏하면 주고받던 대화를 떠올렸다.

"이런 날은 그저 포장마차에서 소주 한 잔 땡겨야 하는데..."였다.

굳이 술에 취하지 않아도 빗소리에 취할 수 있어서다.


바쁜 출근시간임에도 그렇게 빗소리에 취해 한 10분여를 넋놓고 앉아있었다.

차창 밖으로는 출근길을 서두는 다른 직원들의 바쁜 발걸음이 이어지는 게 보였지만, 빗소리에 취한 내 마음은 대책없이 여유롭기만 했다.

여차하면 매일 먹는 아침밥 한 끼, 커피 한 잔 정도 포기하면 되는 거였다.

기를 쓰고 시계만 쳐다보며 달려가야 할 이유는 없었다.

50여년 간이나 그렇게 달려온 걸로도 이미 충분했다.


​출근길만 아니라면 어디 가까운 해장국집에라도 달려가서 얼큰한 국물 안주에 쓴 소주 한 잔 곁들이고 싶단 맘이 간절했다.

중독인가 싶을만큼 소주 한 잔이 그리운 또 하루의 아침이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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