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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04. 2022

믿었던 약 때문에 큰 탈이 난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88

살아 생전 우리 아버지는 약 신봉자셨다. 웬만한 병 정도는 약만 먹으면 다 낫는다 믿으셨다. 젊은 시절부터 위장병과 피부질환을 고질병으로 달고 살았지만, 아버지는 병원에 가는 대신 밥처럼 약을 껴안고 사셨다.


결국 아버지는 믿었던 약 때문에 큰 탈이 나고야 말았다. 갑자기 앓아 누우셔서 부랴부랴 병원에 입원해 진찰을 받은 결과 평소 드시던 약이 병의 원인이었다. 의사 처방 없이 환자가 장기간 반복적으로 특정약을 복용하는건 자칫 독약을 먹는 거나 다름없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게 의사 설명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호된 경험을 치루고도 아버지의 약 신봉은 멈추지 않았다. 오랜 세월 드시던 약은 끊었지만, 대신 병원 처방약을 산처럼 쌓아놓고 드시기 시작한 거다. 한 주먹씩이나 되는 약을 밥먹듯 입안에 털어넣는 아버지를 볼 때면 염려가 됐지만, 그 어떤 말로도 말릴 수는 없었다.



과도한 약 복용은 오히려 병을 키우는 미련한 행동이란 게 상식이지만, 사실 우리 아버지들 시대엔 많은 분들이 그렇게들 사셨다. 병원 문턱이 서민들 입장에선 범접하기 쉽지 않을만큼 높디 높은 탓도 있었고, 좀 아프다고 병원엘 갔다간 의사 선생님이 덜컥 입원이라도 권할까 봐 겁이 나기도 했던 까닭이다.


그래서 그 시절엔 많은 아버지들이 병원 가기를 두려워했고, 약국에서 지어온 약 몇 개에 의지해 속병을 앓으며 살곤 했다. 그러다가 작은 병을 키워 큰병을 앓게 되거나, 심하게는 돌아가시는 경우까지도 생기곤 했다.


전 국민 의료보험은 기본이요 생애전환기 암검진이다 뭐다 국가에서 살뜰하게 보살펴주는 요즘 세상에 사셨더라면 지금쯤 우리 아버지도 좀 더 천수를 누리며 건강하게 살아계시지 않았을까 싶어 한번씩 내가 안타까운 심정이 되곤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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