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내가 즐겨들었던 노래 가운데 <타조>라는 가요가 있다. 가수 이태원이 부른 곡이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우리는 얼마나 진실했었나/ 때로는 방황하고 고민하면서 우리는 그 무엇을 찾아야 하나> 하는 가사로 시작되는 노래였다.
이 노래 가운데 가장 내 귀를 잡아 끌었던 대목은 <욕심 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너와 나는 날 수 없는 새가 되었나>라는 가사였다. 어린 시절, 시골집 마당에서 날개를 푸드득거리는 닭들을 볼 때면 '저 녀석도 원래는 하늘을 훨훨 날 수 있는 새가 아니었을까?' 하는 엉뚱한 상상을 하곤 했었는데, 내 그런 생각과 노래가사가 신기하게도 겹쳐보여서였다.
그러니까 원래는 하늘을 훨훨 자유롭게 날아다니던 닭이라는 새를 인간들이 잡아왔고, 먹고 남은 것들은 비축용으로 우리에 가둬 기르다 보니 매일 알까지 낳는 알찬 품종이라 가축용으로 한 번 길러봄직 하다 판단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런 결심이 서자 날아서 도망치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닭 우리는 사방 벽뿐 아니라 천정까지 꽁꽁 틀어막았을 테고, 그렇게 가축용으로 길러지는 사이 <용불용설>에 의해 날개가 퇴화됐을 거다.
얼마전 시내에 있는 한 공원을 찾았다가 수도꼭지에 매달려 애타게 물을 갈구하는 새 한 마리를 보는 순간 나는 문득 예의 <욕심많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라는 노래가사를 떠올렸다. 얼마나 먹을 물 구하기가 힘들었으면 새가 위험을 무릅쓰고 인간들 영역인 수도꼭지에까지 매달릴 생각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욕심많은 사람들>이 먹을 수 있는 물이란 물들은 다 끌어모아다가 저희들끼리만 처먹으겠다는 듯 수도꼭지 안에 가둬둔 까닭에 먹을 물이 없어진 새들이 저런 수난을 당하고 있구나 싶었다. 어쩌다 한 방울씩 똑똑 떨어져 내리는 물방울 하나 받아먹으려 사람들 눈치를 살피며 저렇게 아둥바둥 수도꼭지에 매달리고 있구나 싶어 안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