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멀지않은 곳에 반딧불이 집단서식지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아내와 함께 밤마실에 나섰다. 가능하다면 난생 처음 반딧불이 사진이란 것도 한 장 찍어보고 싶었다. <사람이 있는 풍경>이 아니면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 하는 나로선 흔치 않은 충동이었다.
하지만 반딧불이 집단서식지가 있다는 전북 익산의 한 대나무숲 입구에 도착한 순간 나는 후회하고 말았다. 평소라면 차 한두 대 정도 와있을까 말까 했을 그곳에 어림잡아 50여대 이상의 차들이 빽빽하게 주차돼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들도 인터넷 어디선가 관련 정보를 접하고선 맛집 줄서듯 우르르 몰려든 모양이었다.
출사지에서 흔히 벌어지는 단체출사 패거리들의 이기주의와 꼴 사나운 자리싸움 등이 떠올라 발길을 돌릴까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아내와 함께 밤마실 삼아 나선 길이었고, 그들과 자리싸움을 할 생각도 없었기에 정면돌파하기로 마음 먹었다. 여차하면 사진 찍는 건 포기하고 반딧불이 구경만 하고 돌아온대도 손해볼 일은 없다는 계산이었다.
대나무숲으로 들어서니 역시나 여기저기 괜찮은 촬영포인트마다 삼각대에 대포카메라로 중무장한 무리들이 포진해 있었다. 그들은 행여나 누가 자기들 틈새로 끼어 들새라 잔뜩 경계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사람 하나 지나갈 만한 공간만을 남겨둔 채 삼각대를 겹겹이 쌓아 견고한 성을 구축하고 있는 것만 봐도 그랬다.
그중 어떤 패거리는 "카메라가 20대나 거기만 보고 있는데 그 앞서 얼쩡거리면 어떻게 해요?"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향해 핀잔을 줬다. 사진 찍는 게 무슨 벼슬도 아닌데 웬 멍멍이 소리인가 싶었고, 그렇게 수십 명이 똑같은 화각으로 찍을 거면 대표로 한 명이 찍어 나눠갖는 게 더 경제적이지 않나 판단돼 실소가 나왔다.
또 다른 패거리는 뒤늦게 온 어느 사진가가 자기들 틈새로 끼어들려 했는지 대나무숲이 떠나가라 큰 소리로 쌍욕까지 날려가며 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그 대나무숲이, 반딧불이들이 제 개인 소유도 아닌 터에 무슨 권리로 그 난리를 피우는지 모르겠고, 그런 편협한 심보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긴 할까 안타까웠다.
여자모델까지 모시고 온 또 다른 패거리는 무슨 등불 같은 걸 모델 손에 들린 채 이 포즈 저 포즈 요구하며 연출사진 찍기에 열을 올리기도 했다. 개인취향이 저마다 다르니 이해할 여지는 있을지 몰라도 반딧불이가 인공불빛을 꺼린다는 걸 감안하면 그리 좋은 선택은 아니라고 판단됐다. 뿐만 아니라 자연이 맛난 먹거리로 한 상 잘 차려주는 잔치집에 가면서 쏘세지 반찬이 먹고 싶다며 굳이 도시락을 싸들고 가는 짓 아닌가 하는 답답한 생각도 들었다.
그 꼴들이 보기 싫어 그냥 돌아나올까 하던 찰나 한적한 위치에 외따로 혼자 서있는 사진가가 한 명 보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반딧불이 사진을 찍기에 그닥 좋은 환경은 아니어서 다른 패거리들이 외면한 장소인듯 싶었다. 잠시 멈춰서서 찬찬히 살펴보니 길 옆 숲 속으로 반딧불이들이 간헐적으로 왔다갔다 하는게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반딧불이들을 감상하면서 낚시대 펼치듯 카메라를 펼쳐놔 보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사진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짐작하겠지만, 반딧불이 류의 사진은 30초~1분 정도 셔터막을 완전 개방하는 장노출을 활용해야 한다. 그것도 원샷원킬이 아니라 삼각대로 화각을 고정한 채 같은 장면을 수십 수백 번 찍어야 한다. 그 화각 속으로 반딧불이가 불빛을 반짝이며 날아다니면 그 점점들이 아름다운 불빛으로 기록되는 거다. 그러니까 사진에 반딧불이 수백 마리가 날아다니는 듯한 장면은 사실은 몇 마리 정도가 몇 시간 동안 날아다닌 기록인 경우가 많다.
단체출사 나온 패거리들이 차지한 촬영포인트에 얼마나 좋은 장면이 연출됐는진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촬영포인트를 선점하고, 아무리 좋은 장비를 사용한다 해도 결국 반딧불이 사진 성패를 좌우하는 건 모델인 반딧불이다. 모델인 반딧불이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그저 허탕을 칠 수밖에 없는 불쌍한 중생들이 제 주제도 모르고 설쳐대는 거에 불과했다. 그러니 자연 앞에서 제발 좀 겸손해졌으면 좋겠다. 대자연 앞에, 반딧불이한테 부끄러운 짓들을 하면서 대자연이 선물을 안겨주길 바라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