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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23. 2022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던 욕심이 문제였다

소소잡썰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던 욕심이 문제였다. 욕심이 눈을 가리면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마저도 보지 못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그만 망각한 거다. 시야각은 좁은 데 욕심만 더글더글한 인간이라는 동물의 한계인지도 모르겠다.

사건은 오른손 새끼손가락을 구부릴 때 '딸깍' 하는 느낌이 나는 <방아쇠수지증후군>이란 녀석 물리치료를 진행하던 중 발생했다. 의사가 파라핀치료 처방을 내리길래 틈날 때마다 가서 치료를 받기 시작했는데, 좀 하다 보니 그 일이 너무 익숙해진 거다. 처음 시작할 때의 FM적인 태도 대신 AM적으로 좀 흐트러지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이를테면 파라핀 용액에 손을 담궜다 빼는 단순동작만 해도 그랬다. 처음엔 물리치료사가 알려주는 대로 담글 때 마음 속으로 '하나 둘 셋 넷...'을 헤아리고, 뺀 뒤 다시 '하나 둘 셋 넷...'을 헤아리며 매뉴얼대로 실천했지만, 좀 지나자 굳이 그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요는 적당한 간격으로 파라핀 용액 속에 손을 담갔다가 적당히 빼내 응고를 시켜주면 되는거 아닌가 하는데 생각이 미친 거다.


허벅지부터 발목까지 바지 한 쪽 자락을 온통 파라핀 용액으로 떡칠하는 사건도 결국 그래서 벌어졌다. 그 직전까지만 해도 치료 뒤 떼어낸 파라핀 덩어리들은 손으로 잘 갈무리해 다시 통 속에 넣곤 했는데, 좀 익숙해지자 엉뚱한 욕심이 발동한 거다. 파라핀을 갈무리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손에 묻어나곤 하는 찌꺼기들을 피할 방법을 궁리하게 된 건데, 그 결과 치료과정에서 사용하는 나무 스틱을 활용하는 방법을 생각해냈다.


나무스틱으로 파라핀 덩어리들을 받쳐든 채 오른손은 위쪽에 살짝 올려 균형만 거드는 방법이었다. 손 전체가 아닌 손가락 하나 정도만 파라핀 덩어리에 닿게 함으로써 손에 묻어나는 찌꺼기를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 얄팍한 수작이었다.


그게 실수였다. 처음 나무스틱으로 파라핀 덩어리들을 받쳐든 채 통 위로 이동하는 거까진 좋았지만, 그걸 통에 넣으려던 순간 좁은 나무스틱으로 겨우 유지하던 균형이 급격히 무너지면서 그만 '텀벙' 하고 파라핀 덩어리가 요란하게 다이빙 입수를 하고 만 거였다. 순간 통 속에 담겨있던 파라핀 용액들이 아우성을 치면서 사방팔방으로 튀어올랐고, 무릎이 맞닿을 듯 앉아있던 내 바지 한 쪽 자락이 뜨거운 파라핀 용액으로 온통 범벅되는 불상사가 벌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나는 뒤늦게 치료실 의자마다 점점이 묻어있던 파라핀 용액 흔적들이 왜 거기 있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치료를 받으러 다니는 동안 '물리치료사가 하라는대로만 하면 용액이 튈 일이 없는데 의자마다 왜  모양일까?' 하는 의문을 품게 만든 흔적들이었다. 인간이란 동물들 생각은 다 거기서 거기이고 보면 손을 더럽히고 싶지 않다며 나처럼 잔꾀를 부리는 놈이 나 하나일 리는 만무했던 거였다.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먹어봐야 안다>는 말이 딱 연상된다. 남의 말은 귓등으로도 듣지않고 본인이 직접 경험해봐야만 비로소 깨닫는 우매한 인간들 본성을 꼬집는 말인데, 살다 보면 나같은 우매한 인간들은 그렇게 아픈 경험을 통해 비싼 수업료를 치른 뒤에야 때늦게 배움을 얻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앞으론 그러기 전에 웬만하면 <매뉴얼>을 믿고 따라야겠단 생각이 든다. 나보다 훨씬 똑똑하고 경험도 많은 전문가가, 혹은 나보다 앞서 숱한 시행착오를 겪어본 사람들이 머리를 싸맨 끝에 집단지성을 발휘해 만들어낸 게 바로 <매뉴얼>이니까...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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