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06. 2022

비에 젖는 건 두려운 게 아니다

소소잡썰

지금은 초등학교라 불리우는 <라떼> 국민학교 시절, 하교길에 소나기를 만난 적이 있다. 우산을 받고 간다 해도 온몸이 거의 흠뻑 젖을 정도의 폭우성 장대비였다.


처음엔 비를 피해 얼른 집에 갈 욕심으로 힘껏 달렸었다. 하지만 내 욕심이었을뿐 쏟아붓는 장대비 앞에서 그건 될성부른 일이 아니었다. 그 당시 유행어였던 <비 사이로 막 가> 신공으로도 도저히 피해가기 힘든 폭우였다.


결국 오래지 않아 내 몸은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흠뻑 젖어버렸고, 이내 속옷까지 다 젖었다. 그리고 그걸 느낀 순간 처음의 조급했던 마음은 씻은듯이 사라지고, 이상하리만치 마음이 편해졌다. 유튜브 스타로 떠오른 <소울리스좌>의 "다 젖습니다" 타령처럼 '이제 젖을 만큼 다 젖었으니 더 젖을 것도 없네' 하는 안도감이라고나 할까.


아니, 그보다는 '막상 다 젖어보니 비에 젖는 것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니네!' 하는 깨달음 같은 거 아니었나 싶다. 비에 젖기 전까지는 머리만큼은 안 적시려, 속옷만큼은 살려보려 죽어라 뛰어다녔지만, 더 젖을 곳조차 없을만큼 다 젖고나자 더 이상 두려운 게 없어졌다. 뭔가 가슴 속이 시원해지면서 많이 자유로워진 느낌이었다.



그 뒤로 나는 한번씩 장대비가 쏟아질 때면 그날처럼 온몸을 다 비로 흠뻑 적셔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작은 우산 아래로 몸을 잔뜩 웅크리며 조금이라도 덜 젖기 위해 몸부림치는 삶 대신 한 번씩은 온몸을 흠뻑 적시는 대가로 몸도, 마음도 한껏 자유로워지고 싶다.


어쩌면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비에 젖는 게 아니라 비에 젖을까 두려워하는 마음이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손을 더럽히지 않으려던 욕심이 문제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