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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13. 2022

기다리는 택배는 항상 늦게 온다

소소잡썰(小笑雜說)

<옥뮤다 삼각지대>라는 동네가 있다. 충북 옥천땅 어디메쯤 있다고 알려진 곳인데, 비행기와 배가 자꾸 실종된다는 <버뮤다 삼각지대>처럼 뭐가 자꾸 실종되는 이상한 동네다.


아마 이쯤 얘기하면 택배 좀 시켜 본 사람들 중엔 '아, 거기!' 하고 무릎을 치는 분들도 많을 거다. 그렇다. 바로 그곳이다. 어제쯤 혹은 오늘쯤 도착했어야 할 택배가 있는데, 통 소식이 없어 배송조회를 해보면 단골로 등장하는 동네이름이 바로 <옥뮤다 삼각지대>다. 정식 명칭은 <옥천 허브>지만, <옥뮤다 삼각지대>라는 닉네임으로 더 널리 알려진 곳이다.


국토의 중심부인 대전에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부산 방향으로 조금 내려가는 곳에 위치한 이곳은 전국 각지에서 오고 가는 수많은 택배들의 중간 기착지쯤 되는 곳이다. 서울과 경기 등에서 내려오는 택배, 부산과 광주 등에서 올라오는 택배들이 잠시 들러 차를 갈아타는 환승역이라고나 할까.


문제는 하루에도 몇 만인지 몇 십만 개인지 모를 수많은 택배들이 오가다 보니 한번씩 사고가 터진다는 거다. 분류하는 사람 혹은 기계의 실수로 엉뚱하게 잘못 분류되기도 하고, 가끔은 어느 구석으로 굴러 떨어져 분실되기도 한다. 덕분에 물건을 주문한 뒤 택배 오기만 오매불망 기다리던 누군가는 애꿎은 <배송조회> 시스템만 들볶으며 몇날 며칠 애를 태우기도 한다.


나 역시 몇 번이나 그런 애타는 경험을 한 적이 있고, 최근에 다시 한 번 그 일을 되풀이해 겪었다. '쓰던 폰이 시름시름 앓아서...'라 변명하고 싶지만 양심적으로 그건 아니고, <1억 화소>와 <100배 줌>, <엑스퍼트로우 지원> 카메라가 탑재됐다는 누군가의 꼬드김에 혹해 최신폰 하나를 지르면서 생긴 일이었다.


동네 산책길에, 혹은 여행길에 한 번씩 찍는 스마트폰 사진이 영 만족스럽질 못 하고, 그 원인은 내 사진실력 탓이 아니라 후진 구형 폰 카메라 때문이라며 주구장창 <남탓>을 해오던 끝이었다. 그런만큼 4년여 만에 새로 장만하는 새 폰 카메라에 대한 기대는 컸고, 주문한 그 순간부터 하루에도 몇 번씩 배송조회를 확인하며 내 손에 들어오기만을 학수고대 기다렸다.


첫 번째 주문했던 업체에서 하루 반나절이 지나도록 <주문 확인 중> 상태인 게 화가 나 취소를 해버린 탓도 있었다. 그 과정에서 꼬박 이틀 정도를 허비한 터라 다른 업체에 다시 주문했을 땐 더 조바심이 나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그래봐야 하루이틀 차이일 뿐인데 너 도대체 왜 그러니?' 하고 나 자신을 나무라도 봤지만, 조급증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다행히 두 번째 주문한 업체에선 당일 저녁에 바로 제품을 발송했다. 그동안의 물건 주문 경험에 비춰보면 십중팔구 이튿날이면 전주에 있는 우리집까지 배송돼 올 거였다. 그런 기대감으로 다음날 아침 배송조회를 해봤는데, 악명 높은 <옥뮤다 삼각지대>에 제품이 머물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새 폰 카메라를 얼른 써보고 싶은 욕심에 일하는 틈틈이 배송조회를 눌러봤지만, <옥뮤다 삼각지대>에 떨어진 나의 새 폰은 하루 종일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다. '그래, 하루쯤 늦을 수도 있지. 다음날이면 분명히 배송될 거야!' 하고 자꾸 조급해지는 마음을 가까스로 다잡았는데, 그 이튿날도 여전히 나의 새 폰은 <옥뮤다 삼각지대>에 잡혀 있었다. 망할놈의 옥뮤다  같으니라구...


결국 나의 새 폰은 그로부터 하루가 더 지난 뒤에야 우리집에 도착했다. 인터넷 후기를 보면 <옥뮤다 삼각지대>에 빠져 물품이 분실되거나 일주일 이상 늦게 받은 사람도 많다던데, 그 정도면 아주 매우 많이 양호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달래며 포장박스를 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기다리는 택배는 왜 항상 늦게 오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그것이었다. 그동안의 경험에 비춰보면 일상 생활용품 같은 것들은 굳이 기다린다는 느낌조차 없이 받았었는데, 기다리는 택배는 거의 항상 늦게 왔다는 데 생각이 미친 거다.


왜 그런 걸까 곰곰 생각을 해보았다. 그 결과 얻은 결론은 '택배가 우리집으로 달려오는 속도보다 내 마음이 우리집으로 달려오는 속도가 더 빨라서'라는 거였다. <기다림>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는 택배차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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