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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10. 2022

과로가 사람에게 이렇게 해롭다!

소소잡썰

몸도 마음도 너무 지쳐있었던 탓이라고 변명하고 싶다. 엄숙해야 할 장례식장에서 이른바 <사회 짬밥>만도 평균 20년 가까이 되는 세 명의 중년 남자들이 트리오로 그런 바보 삼식이 짓을 저지른 건...


사건의 발단은 전주에서 여수까지 왕복 300킬로미터 넘는 먼 길을 당일치기로 다녀와야 하는 무리한 출장 일정에서 비롯됐다. 그것도 오후에 출발하는 일정이었다. 벅찬 일정도 문제였지만, 하필 야외 행사이다 보니 출장길 내내 삼십 몇 도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와도 맞서 싸워야 했다. 덕분에 행사를 마치고 저녁 늦게 전주로 돌아오는 길은 우리 일행 모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얼른 샤워부터 하고 개운한 상태로 침대에 몸을 던지고 싶다는 마음뿐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건 우리의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회사로 다시 들어가 그날 행사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야만 했고, 갑작스레 날아든 팀 동료 아버지의 부고에도 응해야만 했다. 이에 우리 일행은 의논 끝에 장례식장 먼저 들러 조문을 한 다음 회사로 돌아가 보고서를 정리하기로 결정했다. 보고서는 다음날 아침까지 제출하면 돼서 밤 늦게까지라도 작성하면 됐지만, 장례식장은 도착 즉시 간다고 하더라도 거의 밤 10시 가까이나 돼야 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잠겨있을 팀 동료가 우리 때문에 새벽까지 쉬지도 못한 채 조문객을 맞게 하고 싶진 않았다.


장례식장에 도착해 조문하러 들어가기에 앞서 우린 짧은 작전타임을 가졌다. 선임자인 A는 기독교인이어서 절은 하지 않겠다 했고, 후배 B는 그러면 자기도 절은 안 하고 묵념만 하겠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하며 바쁜 걸음으로 분향소에 들어서는데, 입구에 <상주에게 절하지 말고 고개만 숙여주세요> 하는 안내문구가 적혀있는 게 보였다. 후배 B는 이걸 보더니 "상주에게 절하지 말고 고개만 숙이랍니다" 하고 앞서가는 우리에게 전달했다. 나는 알았다고 답하며 선임자 A를 따라 분향소로 들어섰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선임자인 A가 앞으로 나가 향을 사르거나 국화 한 송이를 올려놓아야 할 타이밍이었다. 하지만 A는 우리 일행이 모두 자리를 잡은 뒤에도 한동안 묵묵히 서있기만 했다. 이에 셋 중 가운데 자리를 맡은 나는 'A는 종교적 이유로 절을 않겠다 하더니 분향이나 국화 올리는 것도 생략할 모양이구나' 하고 판단한 뒤 절을 올리기 위해 무릎을 꿇었다. 내가 움직여야 좌우에 선 일행들도 기도를 하든 묵념을 하든 할 거란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바로 그때 A가 성큼 앞으로 한 발자국 나아갔다. 그 순간 뭔가 잘못된 걸 느낀 우리는 서로 눈을 부딪친 채 잠시 얼음이 됐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그때 A는 후배 B가 아직 안 들어왔다 착각을 해 잠시 기다리며 서있었고, 한 박자 늦게 B가 이미 자리를 잡고 있음을 확인함과 동시에 부랴부랴 분향을 하러 나간 거였다. 하필 그와 동시에 내가 절을 하기 위해 무릎을 꿇었고, A는 '예의상 분향을 하건 국화를 올리건 하긴 해야 하는데 이걸 어쩌지?' 하며 잠시 고민을 했다고 한다. 나 역시 '무릎을 펴고 다시 일어나 서있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며 어정쩡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 불과 2~3초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엄청 길게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어색하고 당황스런 순간을 어찌어찌 모면한 뒤 상주들과 서로 인사를 나누기 위해 마주섰는데, 우리는 또 한번 당황해야만 했다. 종교적인 이유로 절은 하지 않겠다던 선임자 A가 상주들을 향해 기습적으로 넙죽 절을 했기 때문이다. 고개만 숙여 인사하려 자세를 가다듬고 있던 상주들은 급하게 맞절을 했고, 묵념만 하려던 나와 후배 B 역시 한 박자 늦게 다급히 맞절을 해야만 했다. 그동안 정말 숱하게 많은 장례식장을 다녀봤지만, 이렇게 손발 안맞는 조문은 처음이었다.


무리한 출장 일정에 한 번, 엉망진창 삼지창이었던 조문에 또 한 번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친 우리 일행은 회사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서로에게 "그때 도대체 왜 그랬던 거에요?" 하고 마음 속에 담아뒀던 궁금증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때 그 순간 A가, B가, 그리고 내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밝혀질 때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이없어 하고 기 막혀 하며 박장대소를 터뜨렸다. 정말 그런 바보 삼식이들이 또 없다 싶었다. 


그렇게 눈물까지 찔끔거리며 한참동안이나 깔깔거리며 박장대소를 터뜨린 끝에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도둑질도 손발이 맞아야 해먹는 건데, 우린 틀린 거 같소. 혹시 나중에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도둑질 할 일 생기더라도 우리 절대로 파트너는 되지 맙시다!"라고...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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