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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27. 2022

드라마 <도깨비> 흉내를 내는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87

가끔 한 번씩 부모님 댁을 방문할 때면 아버지는 어린 손녀들 손을 이끌고 부리나케 외출을 서두르시곤 했다. 동네 슈퍼마켓이 목적지였다. 그곳에 가면 아버지는 어린 손녀들 앞에서 드라마 <도깨비>에 나오는 주인공 공유 흉내를 내시곤 했다.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먹고 싶은 거 다 골라봐라!!!" 하고 말이다.


덕분에 우리 딸들은 할아버지와 한 번 나갔다 오기만 하면 양손 가득 군것질거리들을 들고 오곤 했다. 제 엄마 아빠는 몸에 안 좋다는 핑계로 평소 잘 사주지도 않던 과자며 사탕이다 보니 잔뜩 신바람이 나서는 싱글벙글 웃음을 머금은 채...


아내와 나는 속으론 질색팔색을 했지만, 차마 내색할 수는 없었다. 손녀딸들보다 더 행복해져서는 평소 보기 힘든 멋진 미소를 얼굴 가득 머금은 아버지에게 무슨 말을 한들 들리셨을까. 그저 "아이구 아버지, 한두 봉지만 사주시면 되지 누가 다 먹으라고 이 많은 걸 사셨대요?" 하며 볼멘소리 아닌 볼멘소리를 입 안에서만 우물거렸을 뿐이다.



사실 이게 어디 우리 아버지 한 분만의 일이었을까. 어쩌다 손주들이 집에 놀러오면 뭐라도 하나 더 해주고 싶어 냅다 동네 슈퍼로 데려가서는 "금 나와라 뚝딱!" 요술방망이도 없으시면서 드라마 <도깨비> 주인공이나 된 것처럼 동네 슈퍼마켓 플렉스를 누리는 행동들이...


아마도 당신 속으로 낳은 자식놈들 키울 때는 먹고 사는 일이 너무 힘들어 선뜻 과자 한 봉지 못 사준 일이 두고두고 눈에 밟혀서 더 그러시는 거 아닌가 싶다. 좀 먹고 살만해지니 과자를 사주고 싶어도 어느새 훌쩍 자라있는 게 자식놈들이라 때늦은 미안함이 손주들에게로 향하는 모양이다.


이미 해준 것들보단 해주지 못한 것들이 더 마음 쓰이고 미안한 아버지 마음을 알기에 나는 그런 아버지를 차마 말릴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나 역시 어느 훗날 손주들을 보게 되면 똑같은 행동을 하게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 대상이 슈퍼마켓 과자가 될지, 장난감가게 변신로봇이나 인형놀이 세트가 될진 몰라도 손주들 앞에서 나 역시 이렇게 말하게 되지 않을까 싶다. "돈 걱정말구 여기서부터 저기까지 먹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골라봐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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