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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11. 2022

조금 부족하지만 아버지입니다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89

몇 년 전 고속버스터미널 옆을 지나던 중 인상적인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한 택시기사님이 운전석 문을 연채 핸들을 잡고 시동 꺼진 택시를 열심히 밀고 있는게 그것이었다.


기름값을 아끼느라 한여름에도 시동을 끈채 대기하는 택시기사들이 있단 얘긴 들었지만, 실제로 본 건 처음이라 뭔가가 가슴을 쾅 때리는 느낌이었다. '우리 아버지들은 저렇게 아버지 노릇하느라 온몸으로 힘들게 세상을 살아내고 계시는구나'하는 감동이라고나 할까...


'세상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쓰여진다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라는 윤동주 시인의 시 한 귀절이 온통 내 가슴을 헤집어놓곤 하던 시절이 있었다. 열심히, 치열하게 살아야겠단 자기반성이었는데, 예의 택시기사님을 보는 순간 잊고 살았던 그 귀절이 문득 다시 떠올랐다.



두 딸의 아버지로 20년 넘게 살아보니 세상 아버지들이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가족들을 위해 기름값 몇 푼 아끼고자 뙤약볕 아래 시동 꺼진 차를 밀던 예의 택시기사님 같고, 자식들을 위해 그 좋아하는 술 담배를 칼로 치듯 딱 끊으셨던 우리 아버지 같다고나 할까.  그렇게 자식만 바라보느라 나를 버리고 잊은 채 쉼없이 이타적인 삶을 살아가는 <자식 전용 성자(聖者) 같았다.


물론 아버지들 중엔 <성자>란 단어가 너무 불편한 사람도 있을 거다. 또 자식들 중 이에 선뜻 동의 못하겠다사람도 여럿 있을 거다. 나 역시 아버지가 되기 전까지는 그랬었다. 그러나 보는 관점에 따라 좀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 많이 부족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버지는 아버지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버지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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