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나무인형의 꿈

이야기가 있는 풍경

by 글짓는 사진장이

10년쯤 한 자리에 우두커니 앉아 한 곳만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여수세계박람회장을 찾았다가 거대한 나무인형이 우두커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며 문득 든 생각이다.

2012년 행사가 열렸으니 그로부터 꼬박 10년을 저 자세로 앉아있었을 거란 생각이 들어서다.


하필이면 기차역이 딱 마주보이는 역 앞에 앉아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여수세계박람회가 열렸을 당시엔 수많은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그런 생각할 겨를도 없었겠지만, 지금은 어떨까?

그때 그 시절 인기가 그립기도 하고, 하릴없이 남겨진 지금 시간들이 견디기 힘들진 않을까?


그렇게 혼자 남겨지고, 서서히 잊혀져가는 시간들을 견디는 모습이 마치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다.

갓 태어났을 땐 주변 모든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독차지하며 행복하게 잘 살다가 세월의 흐름과 함께 늙고 병들며 세상 저편 뒤안길 속으로 잊혀져가는 사람들 인생과 꼭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외롭고 외롭고 또 외롭다가 잊혀진다는 느낌조차 없이 까마득하게 잊혀질 때 조용히 세상과 작별한다는 점...


그래서 더 외로워지고 잊혀지기 전에 그 역시 훌훌 털고 일어나 그만 다른 곳으로 떠나고 싶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엉덩이 한 번 툭툭 털고 일어나 눈앞에 보이는 기차역으로 성큼성큼 걸어가선 아무 기차나 첫 기차를 타고 미련없이 훌훌 떠나버리는 상상을 했다.

그러면 어딘가 새로운 역에 도착하고, 그곳에 다시 누군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 새로운 마음으로 또 한 세상을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진이 그렇게 쉽게 찍혀지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