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Aug 18. 2022

염색 때문에 힘들었던 아버지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92

나이 50을 넘긴 뒤로는 가끔 거울을 보다가 깜짝짬짝 놀라곤 한다.

그 안에서 돌아가신 우리 아버지 얼굴이 보여서다.

특히 거의 하얗게 변한 머리색과 어우러진 얼굴이 그렇다.



직장생활이 한창이던 40대까지만 해도 우리 아버지는 늘 머리염색을 하셨었다.

새치가 많은 편이라 회사 사람들 보기 흉하다는게 이유였다.

수시로 드나드는 직원들과 마주쳐야 했던 경비업무 특성상 더 그랬다.



문제는 피부질환이 있으셨던 터라 가려움증 등 트러블이 매우 심했다는 거다.

당시엔 병원 문턱이 높아 피부 좀 가려운 걸 갖고는 갈 엄두도 못냈었다.

할 수 없이 아버지는 민간처방에 따라 한 달에 한두 번씩 한증막을 다니기 시작했다.

염색약의 독기를 땀으로 뽑아낸다는 거였는데, 별로 효과가 있었던 거 같진 않다.



그러다가 큰 병을 얻어 직장생활을 그만 두신 후 아버지는 머리염색을 중단하셨다.

그때가 대략 50대 초반이었고, 그동안 감춰졌던 무성한 흰머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지금의 내 나이 무렵이다.



나 역시 2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고는 있지만 염색을 하다가 중간에 포기하고 말았었다.

아버지 유전자를 물려받은 때문인지 피부 트러블도 매우 심했고, 시력도 급격히 나빠져서다.

다행히 그 문제로 시비를 거는 사람은 많지 않았고, 시비를 걸던 사람은 제풀에 자빠지곤 했다.



하지만 검은 오리들 사이에 흰 오리처럼 눈에 잘 띈다는 건 크든 작든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었다.

시대적으로 그걸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지 않던 시절을 산 아버지에겐 아마 더 그랬을 거다.

거울 속에 비춰진 내 흰머리 아래로 겹쳐지는 아버지 얼굴을 떠올릴 때면 그래서 마음이 짠해지곤 한다.



염색 때문에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주변 동료들도 적지않다.

우리 아버지 경우에 역지사지 비춰보면 다른 아버지들 역시 짠하긴 마찬가지인 셈이다.

예전보단 좀 나아졌다 해도 여전히 직장상사 눈치 살피느라 염색약 신세를 면치 못하는 아버지들이 많다.

세상 모든 모든 아버지들이 앞으로는 이런 업무 외적인 거로 스트레스 받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직장생활이 조금은 더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 더러워서 이놈의 직장을 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