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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03. 2023

딸바보 사진작가 아빠의 수줍은 사랑고백 <윤미네 집>


이 사진집을 보다가 눈물을 펑펑 쏟았다는 사람들 말을 액면 그대로는 믿지 않았다. 아기가 태어날 때부터 결혼할 때까지 사진들이라고 해봐야 크게 예상을 벗어날 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건 나의 큰 오산이었다. 아니, 오만이었다. 책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점점 가슴이 짓눌리는 느낌이 들더니만 사진집 제작에 임하는 작가의 말 한 마디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울컥했다.


짝사랑을 닮은 애틋한 마음으로 곱게 키운 딸 윤미 손을 잡고 결혼식장에 입장하는 작가 모습이 사진집 서문에 담긴 <수줍은 사랑고백>과 오버랩 되면서다. 결혼과 함께 사랑하는 딸을 미국으로 떠나보낸 작가는 "그때부터인가, 나에게는 시간만 생기면 김포 쪽 하늘을 멍하게 바라보는 좋지 않은 습성이 생겼다. 곧 윤미가 돌아올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런데 그쪽 하늘에서는 웬 비행기가 그토록 수시로 뜨고 내리는지..."라고 그리운 심경을 적고 있다. 품 안의 자식을 멀리 떠나보낸 이 세상 모든 아버지들의 한결 같은 마음일 거라 과년한 두 딸을 키우는 내 입장에선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 심정으로 처음부터 다시 한 장 한 장 사진집을 넘기다 보면 윤미가 내 딸처럼 느껴졌다. 아직 제대로 눈도 뜨지 못한 갓난 아기 모습부터 아빠가 아니고선 결코 담아내기 힘든 일상 속의 이러저러한 모습들, "자는 아이 깨게시리 또 카메라를 들이댄다"는 아내의 잔소리에도 굴하지 않고 그 사랑스런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들이대고 또 들이대는 불굴의 사랑, 암 투병 중이었던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사랑하는 가족들 모습을 한 장이라도 더 담으려 기를 쓴 작가의 투혼이 느껴져서다.


1990년 출간된 <윤미네 집>에 <My wife> 편을 덧붙여 2010년 재출간한 사진집에 '사랑하는 남편과 지난 날을 추억하며'라 적은 아내의 소감문을 보면 더 한층 큰 감동이 밀려온다. "2002년 남편은 발병한 것을 알자 내 사진부터 정리했다. 그 당시 건강 상태로는 더운 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암실에서 몇 시간씩 서있다는 것은 말도 되지 않았지만, 나는 말릴 수도 없었다"고 아내는 회고했다. 그러면서 "남편의 카메라에 비친 내 모습은 좋은 엄마, 착하고 소중한 아내, 그런 특별한 사람이었다. 나는 남편과는 달리 성미 급하고 사려 깊지 못하고 짜증도 잘 내는 그런 사람이라 처음엔 좀 어리둥절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나도 모르게 거기에 맞는 사람으로 살려고 나 자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고 적고 있다. 사진이 작가의 아내를 바꾼 건지, 아내가 작가의 사진을 바꾼 건진 모르겠지만, 한 권의 사진집이 전하는 진한 감동 앞에 사실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윤미네 집>이 우리나라에선 쉽게 찾아보기 힘든 가족기록 사진집이라는 사실이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시대의 편린들이 그 안에 자연스럽게 녹아있다는 등의 사진사적인 의미 역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작가가 그 안에 담아낸 가족 사랑의 무게와, 그 덕분에 우리 같은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진한 감동에 비하면 그런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밖엔 안 든다. 사진집을 통해 작가가 수줍게 전해주는 진한 감동 외의 다른 것들은 전혀 생각할 필요가 없는, <윤미네 집>은 그런 책이다.


노파심에서 밝혀두지만 리뷰 알바 그런 거 아니다. 내돈내산으로 첫 장부터 끝장까지 열심히 탐독한 내 솔직한 감상 후기다.


#윤미네집 #딸바보아빠 #태어나서시집가던날까지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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