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20
참으로 멍청했다 싶은 게 하나 있다. 아버지는 여행의 재미 따위는 느낄 줄 모르는 사람이라고 그동안 잘못 알고 있었던 게 그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몇 번인가 함께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아버지는 단 한 번도 여행의 재미나 즐거움을 표현하신 적이 없었고, 일관되게 어서 빨리 여행이 끝나기만을 바라는 태도를 보여왔기 때문이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더 잘 먹는다는 말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그런 아버지의 태도를 보며 '평소 여행이란 걸 거의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재미도 잘 모르시는 모양'이라고 나는 지레짐작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아버지는 여행의 재미나 즐거움을 몰랐던 것이 아니었다. 최근 아버지의 72번째 생신을 맞아 강원도 쪽으로 가족 여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다. 그곳에서 나는 아버지의 전혀 색다른 모습을 보았다.
이 날 우리 가족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별장이 있다는 관광안내에 따라 고성군 화진포를 찾았다. 아버지가 평소에는 볼 수 없던 색다른 모습을 보인 것은 문제의 별장을 보고 난 뒤 인근 화진포 해수욕장을 찾았을 때였다.
그곳에는 눈이 부시도록 하얀 백사장을 배경으로 맑게 출렁이는 청정바다가 펼쳐 있었는데, 아버지는 "맨 발로 모래를 밟으면 몸에 좋다"며 앞장서 훌훌 신발과 양말을 벗어 던지고는 그 길로 바닷물 속에 첨벙 발을 담그셨다.
그리고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워 하시며 첨벙첨벙 물장난을 치시는 것이었다. 얼굴에는 평소 거의 볼 수 없던 환한 웃음까지 떠올린 채 말이다. 평소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손에 카메라를 들고서도 사진을 찍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꼭 카메라에 담아두고 싶은 모습이긴 했지만, 몇 년만인지 혹은 몇 십 년만일지 모를 그 너무도 즐거워 하시는 순간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였다.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편인 아버지는 분명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화석처럼 딱딱하게 굳어져 버리고 마실 것이었기에 더 그랬다.
어쨌거나 이번 여행에서 나는 '아버지도 물장난을 치며 저런 재미 나고 즐겁다는 표정을 지을 줄 아는 분이었구나!'하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그러면서 아버지가 원래는 말술을 즐길 정도의 애주가였다는 옛 기억도 다시금 떠올렸고, 박봉으로 4남매나 되는 자식들을 키우려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인가 술, 담배마저 모두 끊은 채 재미 따위와는 별 인연이 없는 삶을 살아오셨다는 사실도 함께 떠올렸다.
그 탓에 아버지는 재미를 느끼는 감각기관이 많이 퇴화한 듯했는데, 이번 여행에서 나는 그것의 회복 가능성을 엿보았다. 아울러 꾸준한 재활프로그램(?)을 실시하면 상당 부분 그것을 정상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도 들었다.
앞으로 기회가 나는 대로 꾸준히 재활프로그램을 실시해 그날 그 바닷가에서 아버지가 보여주신, 굳은 얼굴 근육을 푼 채 얼굴 가득히 떠올렸던 환한 웃음을 꼭 한 번 다시 보고 싶다.
아버지 이야기를 연재물로 써나가던 중 17년 전 어느날 써놨던 글을 우연히 되찾았습니다. 그때 아버지께 웃음 재활프로그램을 실시하겠다고 다짐했었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계획만 그럴듯 했을뿐 이런저런 핑계로 아버지 돌아가실 때까지 제대로 실천은 못했네요. 하여간 자식놈들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