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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출근한다 거짓말하고 산에 간 이유
자식놈일 땐 미처 알지 못했던 아버지 이야기 #21
by
글짓는 사진장이
Jun 13. 2021
국난(國難) 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IMF 사태가 터졌던 1998년 무렵,
평일 산엘 가면 양복 입은 아버지들 모습을 드물지 않게 볼수 있었다.
IMF 사태로 극심한 경영난에 빠진 회사로부터 권고사직을 당한 뒤
차마 식구들에게는 그 사실을 말할 수가 없어 출근하는척 집을 나선 거였다.
처음 얼마간은 커피숍도 가고 도서관도 가서 시간을 보냈을 테지만 그것도 잠시,
더 이상 돈 나올 구멍도 없다는 자각에 한푼이라도 아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거고
그래서 결국 가장 돈 안들이며 시간을 보낼수 있는 장소로 산을 선택한 거였다.
다른 한편으로는 끝내 직장을 구하지 못할 경우 '노가다'라도 해야겠단 생각도 있었을 거다.
펜대 굴리는 일 외엔 딱히 가진 기술도 없는 터라 가장 만만한 게 노가다 같은 몸 쓰는 일이었고,
노가다를 하려면 산엘 오르내리며 미리 체력 단련이라도 좀 해둬야겠단 생각을 했을 거다.
그런저런 이유로 IMF 시절 아버지들은 양복을 입은채 집 가까운 산으로 몰려 들었고,
산과는 어울리지 않는 구두를 신은 채 외롭게 산길 주변을 서성거리곤 했었다.
IMF라는 국난이 야기시킨 우리 시대 아버지들의 슬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데 최근 집 가까운 산엘 갔다가 양복 입은 아버지 한 분이 구둣발로 서성이는 모습을 보게 됐다.
코로나 사태 때문에 IMF 때보다 경기가 더 안 좋고 구조조정이 시작됐다는 뉴스가 떠돌더니만
또 다시 아버지들의 수난시대가 시작되는가 싶어 가슴이 아파왔다.
비록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전염병 창궐
, 그로 인한 기업 도산과 구조조정이야
아버지들 개개인의 힘으로 막거나 피하기 불가능한 일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아무쪼록 이번만큼은 아무 일도 없는 척 산으로 들로 숨어다니며 혼자 아파하시지 말고
가족들과 함께 그 무거운 짐을 나눠 져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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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구조조정
직장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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