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약 안에 마약을 숨겨 들여왔다가 체포된 베트남 항공기 여승무원들 기사를 읽다가 문득 10여년 전 아내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왔던 때가 생각났다. 그때 어쩌면 범죄와 연루될 뻔한 아찔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패키지 여행이었고, 며칠간 별 문제없이 기분좋게 여행을 잘 마쳤다. 그런데 귀국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아내가 머뭇거리는 기색으로 내게 고민을 털어놨다. 가이드 부탁으로 일행 중 누군가의 캐리어 하나를 대리로 싣기로 했는데, 기분이 영 찜찜하다는 거였다.
쇼핑을 너무 많이 하는 바람에 일행 중 하나가 개인당 주어진 탁송물 무게 한도를 초과했으니 일행끼리 서로 돕자는 취지였다. 취지야 좋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미안하지만 안 된다고 말합시다" 하고 잘라 얘기했다. 앞서 몇 차례의 해외출장을 다녀올 때 받았던 교육이 생각나서였다.
마약범들이 체포 위험을 피하기 위해 즐겨 사용하는 수법 중 하나가 자기 가방을 누군가에게 맡겨 대신 운송하는 거라고 했다. 이를테면 패키지로 해외여행을 같이 떠난 일행 중 만만한 누군가를 구슬러 이런저런 명목으로 자기 가방을 대신 운반하게 한 뒤, 한국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오면 되찾아가는 식이었다.
이렇게 하면 수사당국으로부터 어쩌면 주목받고 있을지도 모를 자신이 안전하게 입출국을 할 수 있고, 만약 마약 든 가방이 중간에 적발되더라도 자기는 상관없다며 빠져나갈 수 있다는 거였다. 선의로 가방을 대신 운반해 준 사람만 졸지에 마약범으로 몰려 곤욕을 치루게 된단 얘기다.
이같은 설명을 해준 뒤 나는 가이드에게로 가서 미안하지만 캐리어는 대신 맡아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문제의 캐리어를 맡기려던 일행이 마약범까진 아닐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 안에 뭐가 든지도 모르는 가방을 겁도 없이 내 것인양 들고 공항 게이트를 통과할 수는 없었다.
가이드로부터 내 말을 전해들은 일행은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노골적으로 불쾌하단 기색을 내비쳤다. 돈 드는 일도 아닌데 그까짓 거 좀 해주면 어떠냐는 심산일 거였다. 하지만 불과 며칠 함께 관광을 다녔을뿐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런 위험부담을 감수할 수는 없었다.
여행을 다녀온 뒤 나는 딸들에게도 신신당부를 했다. 엄마 아빠가 이번에 여행갔다가 이러이러한 일을 겪었는데, 너희도 어디 여행갔다가 혹시라도 누가 가방을 대신 운반해 달라고 하면 절대 응하면 안 된다고.
선의를 악의로 갚는 못된 인간들이 문제긴 하지만, 하도 기상천외한 범죄수법들이 많다 보니 누군가에게 함부로 선의를 베풀기도 힘든 세상이 돼버렸다. 갈수록 사람이 사람을 믿기 힘들어지고 있으니 정말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