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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r 28. 2023

<목련>들이 올핸 강남성형외과라도 다녀온 걸까?


"와, 또 목련이다!"

마치 목련을 처음 보는 어린 아이처럼 여행 내내 아내 목소리는 한껏 들떠 있었다. "올해 따라 목련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예뻐 보인다"는 거였다. 평소 목련에 대해선 다른 꽃들에 비해 점수가 다소 박한 편이었던 아내임을 감안하면 의외였다.


하지만 사실 나 역시 올해 마주치는 목련들은 하나같이 눈이 부시단 느낌이 들었다. 아름드리 거목에 수천 수만 송이를 매달고 있는 녀석도 아름다웠고, 아장아장 아기걸음을 연상케 하는 키 작은 나무에 달랑 몇 송이 매달고 있는 녀석도 귀여운 매력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천년고찰을 배경으로 스님들을 유혹하기라도 하겠다는 듯 화사하게 피어난 녀석도 아름다웠고, 묘지기라도 된다는 듯 외딴 선산 한 모퉁이를 지키고 서있는 녀석도 눈이 부셨다.



'올해는 이 녀석들이 단체로 강남 성형외과라도 다녀왔나?' 하는 싱거운 생각조차 들었다. 한두 녀석도 아니고 이렇게 단체로 갑자기 예뻐 보일 수 있다는 게 신기해서였다. 아내와 내가 동시에 누군가의 최면에 걸린 것도 아닐텐데 말이다.


다행히도 최면에 걸린 건 아닌 거 같았다. 이날 여행 목적지인 부안 내소사에 도착해 보니 벚꽃이며 산수유, 매화, 수선화까지 온갖 꽃들이 만발한 가운데 유독 봄나들이 관광객들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 있었는데, 그 주인공이 바로 목련인 걸 보면.


대웅전 앞 마당 한 편에 자리잡은 목련 한 그루가 그 주인공이었다. 바로 옆에 몇 배는 화사한 빛을 자랑하는 분홍빛 벚꽃이 매혹적인 자태를 뽐내고 있었지만, 이날 관광객들의 원픽은 단연 목련이었으니 말이다. 셀카를 찍는 연인, 가족사진을 찍는 사람 등 사진 한 장 찍으려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할 정도로 목련은 폭풍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었다.


덕분에 천년고찰을 배경으로 멋진 목련 사진작품 한 장 남기고 싶었던 내 바람은 끝내 이뤄지지 못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사람들을 피해 내가 원하는 구도의 사진을 찍을 방도가 없어서였다. 이럴 땐 과감히 포기하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판단돼 돌아섰다.


아쉬운 마음을 간직한 채 내소사를 등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아내가 "예년엔 목련이 별로 안 예쁘다고 느껴졌었는데 올핸 왜 이렇게 하나같이 다들 예쁠까?" 하고 혼잣말인지 감탄사인지 한 마디 중얼거렸다. 바로 그때 문득 내 머리 속으로 뭔가가 관통하는 느낌이 들면서 난 그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됐다.


십중팔구 극심한 봄가뭄 때문일 거였다. 매년 이 맘 때면 목련이 필 무렵 봄비가 쏟아졌고, 비 맞은 목련은 실연 당한 여인처럼 이내 옷매무새가 망가져선 초라한 뒷모습으로 후두둑 꽃을 떨구곤 했었다. 그런데 올해는 지독한 가뭄이 이어졌고, 덕분에 천적과도 같은 봄비를 피한 목련은 봄처녀처럼 화사하게 빛나고 있는 거였다.


목련이 예쁘다고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는 정말 아이러니한 현실이 아닐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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