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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06. 2023

유채꽃 필 무렵이면 생각나는 곳, <부안 수성당>


인생도 그렇지만 여행도 운이 많이 작용한다. 아무리 인간이 머리를 쥐어짜고 별별짓을 다해봐도 운이 따라주지 않음 좋은 결과를 보기 힘들다. <기상청 야유회 가는 날 비 왔다더라> 같은 입방아질도 공연히 생겨나는 게 아니다.


부안 수성당은 내겐 <운이 매우 잘 따랐던 여행지>로 기억에 남아있다. 정말 운 좋게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해무가 짙게 낀 유채꽃 풍경을 마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해무나 유채꽃 둘 중 어느 하나도 보겠단 생각없이 아내와 함께 집 근처 바닷가로 가벼운 드라이브를 나선 길이었다. 


원래 목적지는 부안 채석강이었다. 바닷가라더니 뜬금없이 강 얘기한다고 헷갈리실 분들을 위해 미리 말해두건대 채석강은 바닷가에 있는 기암절벽 인근을 일컫는 지명이다. 중국 시인 이태백이 술을 마시다가 강물에 뜬 달을 잡으려다 빠져 죽었다는 채석강과 풍경이 흡사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다.


각설하고 채석강 주차장에 거진 다 갔을 때쯤 한낮임에도 불구하고 짙은 해무가 낀 게 눈에 들어왔다. 부안 바닷가를 찾은 것만 족히 수십 차례는 되지만 처음 보는 일기현상이라 그때부터 가슴이 설레었다. 이 천재일우의 기회를 그냥 보낼 순 없다는 생각이 든 거다.


그래서 가까운 곳 중 해무를 배경 삼아 사진 찍을 만한 곳들을 검색해봤다. 아침 운해 등을 찍으러 다녀본 내 경험에 비춰봤을 때 낮 안개는 잠깐 나타났다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머뭇대다가는 정말 드물게 만나는 해무가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릴 판이었다.


그때 마침 수성당 유채꽃이 검색 결과에 나타났다. 시기적으로 유채꽃이 만발할 무렵이었고, 당시 내가 서있던 채석강과는 차로 5~10분만 가면 되는 가까운 거리였다. 이에 나는 망설임없이 수성당으로 차를 몰았다. 그 타이밍엔 다른 무엇보다 시간이 생명이었으니까.


결과는 아주 만족스러웠다. 기대했던대로 수성당 유채꽃 밭에도 짙은 해무가 드리워져 있었고, 노란 유채꽃과 어우러져 몽환적인 풍경을 연출하고 있었다. 아마 <방송국  놈들>이나 <영화 찍는 놈들> 중 영상미 좋아하는 분들이 봤으면 없는 씬을 억지로 만들어서라도 한 컷 찍자고 덤벼들 법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아내와 함께 유채꽃을 배경 삼아 신나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었다. 우리처럼 얼떨결에 해무 낀 유채꽃밭을 보게 된 다른 여행객들도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새라 열심히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 아마 그때 그 유채꽃밭에 있었던 사람들 중 누군가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아, 그때 거기 너무 좋았는데...' 하고 아련한 그리움에 빠질 거다.



<날씨 맑음>이라는 일기예보를 믿고 여행을 갔는데 우중충한 하늘 혹은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여행지를 보고 실망해 본 경험 있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나 역시 그런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대치 못했던 곳에서 기대치 못했던 멋진 풍경을 마주한 경험도 그 못지않게 있을 거다. 서두에서 내가 <인생도 그렇지만 여행도 운이 많이 작용한다>고 굳이 말한 이유다.


막상 그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 알 수 없는 게 인생이고 여행이다. 때론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런 내용물이 쏟아져 나올 수도 있고, 때론 기대 이상의 그 무엇이 터져나와 기쁨을 주는 경우도 있다. 마치 내가 마주했던 해무 낀 수성당 유채꽃밭처럼 말이다. 그러니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좀 더 길게, 좀 더 멀리 바라보면서 인생이라는 긴 여행길에서 우리가 낙망은 짧게, 희망은 길게 가져가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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