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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09. 2023

<거스름> 단어가 매우 많이 <거슬렸던> 이유



반골적인 성격 탓인진 몰라도 <거스름>이란 단어를 접한 순간 나는 <거스르다>를 떠올렸다. '거슬러 주거나 받는 돈'이란 본래의 사전적 의미가 아닌 '일이 돌아가는 상황이나 흐름과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태도를 취하다', '남의 말이나 가르침, 명령 따위와 어긋나는 태도를 취하다'로 인식했단 얘기다. 인터넷 게시판에 떠도는 글들 중 최성각 작가가 썼다는 엽편소설 <택시드라이버> 중 나온다는 한 편의 글을 보면서다.


<거스름>이란 제목으로 소개된 해당 글 내용은 이렇다.


'모처럼 고향을 찾은 신승하 씨는 친구에게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하루는 집사람을 따라 중앙시장에 갔었네. 시장 골목 한쪽 귀퉁이에서 파를 팔고 계시는 할머니를 만났는데 마지막 한 단이 남았더군. 앉아 있는데도 허리가 꼬부라져 턱이 바닥에 닿을 것 같은 할머니였네. 왠지 한 단 남은 그 파를 떨이해 주고 싶더군. 보나마나 집이 멀리 떨어져 있을 게 뻔한 할머니가 좌판을 조금이라도 빨리 거두는게 좋겠다는 생각이었지. 우리 집사람도 그렇게 생각한 모양이야. 그거 얼마냐고 물었지.”


“그래서?”

“팔십 원이라는 거야. 주머니를 뒤적였더니 마침 백 원짜리 동전이 잡히기에 할머니에게 건네 줬지. 벌써 할머니는 파를 비닐봉지에 넣어 집사람 손에 쥐어 줬지. 그리곤 무심코 돌아서는데, 할머니가 우리를 부르는 거야.”

“왜?”


“거스름돈 이십 원을 받아 가야 한다는 거야. 그런데 마침 십 원짜리가 하나밖에 없으니 조금만 기다리라기에 괜찮다고 말했지. 그랬더니 이 할머니가 안 된다는 거야. 낮에는 파 한 단에 백 원씩 받았지만, 맨 마지막에 남은 이건 제일 나쁜 단인데 백 원 받는 것은 경우가 아니라는 거지.”


“재미있는 할머니로군.”

“그 순간 아차 싶더군. 그래서 기다렸다가 할머니가 거슬러 주는 이십 원을 받았지.


집에 돌아오면서 내가 살고 있는 모습에 대해서 생각했어. 부끄럽더군. 집사람도 무슨 생각인지 골똘히 하더군. 그 순간 스스로 용납할 수 없는 이십 원을 절대 받지 않은 그 꼬부랑 시골 할머니가 그렇게 크게 느껴질 수 없었어. 이보게들 우리는 얼마나 엉터리들인가!”


-최성각 作 <택시 드라이버> 中​


처음 내 느낌과 달리 예의 글은 '흐름과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의 <거스름>이 아니라 '거슬러 주거나 받는 돈'이란 의미의 <거스름>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거스름>이 자꾸만 다른 <거스름>으로 느껴졌다. 그 글을 읽다 보니 뭔가가 자꾸 내 심기를 <거슬렀기> 때문이다.​


그 뭔가가 뭘까를 생각해 봤더니 그건 시대적 거스름 같은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내가 대학생활과 직장생활을 할 때 자주 다녔던 단골술집 껌팔이 할머니들과의 만남 같은 것과 <거스르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무렵 내가 즐겨 다니던 서울 동숭동 대학로 일대 술집들에는 껌팔이 할머니들이 꽤 많았다. 어떤 땐 손녀쯤 돼보이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경우도 있었는데, 2~300원쯤 되는 껌 한 통을 천원씩에 팔고 돌아다녔다. 대개 술에 취한 사람들은 평소보단 좀 감성이 풍부해졌고, 연인 등 잘 보이고 싶은 상대와 함께 한 자리에선 특히 <어깨에 힘주기 좋아하는 남자들>이 많아서 장사가 제법 짭짤했다. 나 역시 몇 번은 그런저런 이유로 껌을 사주기도 했었다.


뿐만 아니라 개중에는 천원이면 될 걸 잔뜩 오버해서는 5천원권이나 만원권을 내밀며 "잔돈은 됐습니다" 하는 사람들도 간혹 있었다. 껌팔이 할머니 입장에선 완전 땡큐요, 횡재였을 거다. 나중에 그런 할머니들이 앵벌이 조직과 연관돼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론 입맛이 정말 씁쓸해졌지만...


최성각 작가의 <거스름> 글을 보면서 내가 '흐름과 반대되거나 어긋나는 태도를 취한다'는 의미를 문득 떠올린 이유는 바로 그런 거였다. "내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를 부르짖던 어느 영화 주인공처럼 <당당하게> 장사를 했던 우리 어머니들 모습과 대비했을 때 아주 매우 많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길바닥에 판을 깔고 장사를 할지언정 우리 어머니들에겐 <난 물건을 파는 장사꾼일뿐 값싼 동정 따윈 받지 않겠다>는 꿋꿋함이 있었다. 그래서 누군가 80원짜리 파 한 단을 사면서 백 원을 건네며 "잔돈은 됐습니다"라 말하면, 그런 섣부른 동정심 따윈 발로 걷어차 버리는 <거스르는 마음>이 있었다. 그건 아마도 내 손으로 힘들게 땀 흘려 번 돈으로 내 자식을 당당하게, 남 부끄럽지 않게 잘 키워내고 싶다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 아니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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