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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10. 2023

"너네들 그렇게 공부 안 하면 연고대 밖에 못 간닷!"

나는 서울에 있는 명문 사립고를 나왔다(이렇게 얘기하면 쫌 재수없는 거 나도 안다. 하지만 자랑질 하려고 한 얘기는 아니다). 1974년 박정희 대통령 <가카>께서 고교평준화를 시행해 준 덕분이다. 이른바 <5대 사립고등학교> 중 하나로 꼽혔던 학교였기에 고교평준화가 아니었으면 내 삐리삐리한 성적으론 원서조차 들이밀 생각을 못 해봤을 거다.


학교는 평준화가 됐지만 선생님들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 5대 사립고등학교라는 이름에 걸맞는 빵빵한 실력자들이 많았다. 아마 지금처럼 사교육이 활성화 돼 있었다면 <일타강사>로 진출하고도 남았을 선생님들도 여럿 있었다. 자기 전공에 해박할 뿐아니라 그걸 학생들 머릿 속에 쏙쏙 꽂아넣는 교수법 부문에서도 나름 일가견이 있는 실력자들이었다.


그런 선생님들 가운데 한 분이 고교평준화 덕분에 <분에 넘치게> 그 학교에 입학하는 광영을 누린 우리들에게 틈만 나면 탄식조로 내뱉던 한 마디가 있었다. 아주 아주 교육적인 차원에서였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라떼, 아니 너네 선배들 땐 말이다, 내가 공부 안 하는 녀석들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했던 말이 있다"로 시작되는 얘기였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그렇 듯이 지겨운 공부보다는 선생님 첫 사랑 얘기나 신혼여행 후기 같은 공부 외적인 거에 더 관심이 많았던 우리는 당근 선생님이 이런 어조로 잡설을 늘어놓기 시작하면 귀가 쫑긋해지곤 했다. 뭐가 됐든 공부보다는 재밌을 거라는 근거없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거다.


그런데, 하지만, 욕 나오게도 선생님의 다음 발언은 우리를 화나고 자존심 상하게 만들었다. 이어진 선생님의 다음 말인즉 "너네 그렇게 공부 안 하면 연고대 밖에 못 간다"였기 때문이다. '연고대 밖에라니, 공부 게을리하면 연고대 밖에 못 간다라니...' 이게 말인가 방군가 싶었다. 물론 자그마치 전국의 수재들이 몰려들었다는 5대 사립고등학교였으니까 가능했던 말이란 건 잘 안다.


여하튼 그때 처음으로 나는 1등이란 걸 꼭 한 번 해보고 싶단 마음이 생겼다. 대놓고 우릴 무시하는 <건방진> 선생님 코를 확 눌러주고 싶은 오기 같은 거였다. 하지만 공부란 게 오기만으로 되는게 아니었다. 안타깝게도 바람과는 달리 나는 1등이란 걸 못 해봤고, <건방진> 선생님 코 역시 눌러주지 못 했다. 빌어먹을타불.


그때 못 이룬 1등의  꿈을 블로그를 통해 이번에 한 번 이뤄봤다. 파워블로거 선정이니 이달의 블로그 같은 거창한 건 아니지만, <수성당 유채꽃> 포스팅을 통해 검색어 1위에 오른 거다. 가문의 영광까진 아니지만 덕분에 조회수가 쭉쭉 올라가는 그래프를 보면서 '1등이란 거 이런 기분으로 하는구나' 싶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너무 찌질한 자랑 같아 같아 변명 아닌 변명을 덧붙이자면 사진을 하면서 각종 공모전에서 대상이니 장관상이니 하는 것들은 여러 번 타봤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경쟁이 심한 우리나라다 보니 주변을 돌아보면 다른 어느 나라보다 1등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그 많은 꿈꾸는 사람들 가운데 1등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는 거다. 수요와 공급 간 불균형이 심해도 너무 심한 분야가 바로 이 분야 아닌가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망할 필요는 없다. 반에서 1등, 수능에서 1등, 입사시험에서 1등은 힘들지 몰라도 우리 모두는 특화된 각자의 분야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블로그 포스팅 검색어 1등 같은 <쫌 허접한> 1등은 빼더라도 모든 사람에겐 그 사람만의 재능과 특기가 있다고 난 믿는다.


그러니 수만 혹은 수십만 개쯤은 되는 많고 많은 분야들 중에서 고작 하나에 불과한 공부 1등 쫌 못 했다고 너무 기죽진 말잔 얘기다. "그렇게 공부 안 하면 연고대 밖에 못 간다"고 디스나 당하던 나도 나름 잘 커서 블로그 검색어 1위 했다고 여유롭게 도그 껌 씹는 소리나 지껄이며 잘 먹고 잘 살고 있지 않은가.​


#1등먹은소감 #1등지상주의 #수성당유채꽃 #스승의은혜는하늘같아서 #5대사립고등학교 #블로그1등 #열심히공부하자 #연고대밖에 #못다이룬꿈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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