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소소잡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짓는 사진장이 Apr 12. 2023

"초보가 교통사고 좀 낸게 <사랑고백> 받을 일이야?"


오래된 메모장을 정리하다가 <가장 소중한 것>이란 제목으로 저장해 둔 글 하나를 발견했다. 초보운전자였던 한 부인이 운전미숙으로 교통사고를 냈을 때 상황을 상대차 운전자 관점에서 적은 인터넷 게시 글이었다. 그 내용은 대략 이렇다.

'출근길에 있었던 일이다. 옆 차가 바짝 붙어 지나가면서 내 차 문짝을 ‘찌익’ 긁어놓고 말았다. 나는 즉시 차를 멈추었다.

상대편 차를 운전하던 부인이 허겁지겁 내리더니 내게 다가왔다. 많이 놀랐는지 얼굴빛이 사색이 되어 있었다.


“미안합니다. 아직 운전에 서툴러서요. 변상해 드릴게요.”

그녀는 잘못을 인정하였다. 하지만 자기 차 앞바퀴가 찌그러진 것을 알게 되자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틀 전에 산 새 차를 이렇게 찌그러뜨려 놓았으니 남편 볼 면목이 없다며 계속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사고를 처리하기 위한 서류를 꺼내기 위해 운전석 옆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리고는 봉투 속에서 서류들을 꺼냈다.

“이건 남편이 만약의 경우를 위해서 필요한 서류들을 담아 둔 봉투예요.”


그녀는 또 한 번 울먹였다. 그런데 그 서류를 꺼냈을 때 제일 앞장에 굵은 펜으로 커다란 글씨가 적혀 있는 게 아닌가.

“여보, 만약 사고를 냈을 경우에 꼭 기억해요.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사실을.”


그녀의 남편이 쓴 글이었다. 내가 그녀를 다시 쳐다보았을 때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나는 얘기 속 남편 마음에 감정이 이입돼 울컥했다. 갓난 아기가 첫 걸음마를 떼듯 이제 갓 운전을 시작한 아내가 혹시 불의의 교통사고를 겪게 되지나 않을까 염려하는 마음,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쩔 줄을 몰라 아내가 너무 허둥대진 않을까 걱정되는 마음, 혹시라도 <그깟> 차 좀 망가진 것 때문에 아내가 너무 가슴 졸이진 않을까 배려하는 마음 등이 그 몇 글자 안 되는 <커다란 글씨> 속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불의의 사고를 마주했을 때 가뜩이나 속 상할 마음 여린 아내를 위해, "쓸데없는 걱정일랑 하지 말라"고 짧고 명확하게 얘기하려면 뭐라고 써야 좋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을 남편 마음이 글자 한 자 한 자마다 절절하게 느껴졌다.


불의의 사고를 예측할 수 없었던 것처럼 아마도 그의 아내는 이같은 상황 반전 역시 전혀 예측하지 못했을 거다. 이틀 전 새로 산 차를 찌그러지게 만든 당혹스런 교통사고 현장에서 <잽도 없이 스트레이트로 훅> 들어오는 남편의 뜨거운 <사랑고백>을 어떻게 예측할 수 있었겠는가. 사고를 낸 뒤 미안하고 당황스러워 흘리던 눈물이 훅 들어온 남편의 <사랑고백> 스트레이트 한 방에 감동의 눈물로 바뀔 거라고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생각났다. <가장 어려울 때 진정한 친구가 누군지 알게 된다>는 말도 떠올랐다. 초보운전인 아내가 생전 처음 당해보는 교통사고 상황 속에서 어찌해야 좋을 지 몰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는 한 마디는 천 냥 아니라 만 냥, 아니 백만 냥짜리 빚이라도 탕감해주고 싶을만큼 강력한 스테레이트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그런 의미에서 세상의 모든 남편들에게 한 마디 해주고 싶다.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사랑하는 아내님께서 아끼는 차를 몰고 나가 사고를 내더라도 노하거나 슬퍼하지 말라고. 그보다는 애정과 진심을 담아 <그깟> 차는 고치면 되고, <내가 가장 사랑하고 걱정하는 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바로 당신>이라고 말해주자. 어차피 사고는 이미 일어난 거고, 화를 낸다고 해서 뭐가 나아질 일은 없다. 부디 <말 한 마디로 천 냥 빚을 갚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놓치지 말자. 기회를 놓치면 위기가 찾아오게 마련이다.


#초보운전교통사고 #예상못한사랑고백 #차보다는사람이중요해 #위기는기회의다른이름 #내가가장사랑하는것 #감동적인이야기 #슬기로운남편생활 #지혜로운남편 #글짓는사진장이 #사람이있는풍경

매거진의 이전글 "너네들 그렇게 공부 안 하면 연고대 밖에 못 간닷!"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