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몇 년 년 전 내가 처음 <군산 철길마을>을 찾았을 때 그곳엔 <철길마을>이 있었다. 그러나 며칠 전 다시 찾았을 때 그곳에선 <철길>도, <마을>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고만고만한 상점들만 우후죽순 들어서 서로 <돋보이기> 위한 경쟁을 펼치고 있을 뿐이었다.
예전에 봤던 철길마을은 폐철로와 낡은 집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었다. 마치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역사박물관에 간 듯한 느낌도 들었다. 그 안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열심히 살아가고, 삶은 계속된다'는 메시지 같은 걸 담아 전해주는 느낌이었다.
십 몇 년 전 찍은 사진
그런데 어느날부턴가 하나 둘 낡은 집들이 관광객들을 노린 상점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하더니, 이젠 마을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하고 상점들만 득실거리는 공간으로 변해버렸다. 이 마을 시그니처인 <철길>은 상점들이 쳐놓은 그늘막과 욕심껏 배를 디민 상품 진열대들에 치여 잘 보이지도 않는다. 달고나와 쫀디기를 팔아먹을 욕심에 이곳저곳에서 하루 종일 연탄불을 피워대는 바람에 그 가스 냄새로 인해 머리마저 지끈거리게 만든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갈라 버린 것 아니냐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사람들이 꼬이는 곳에 장사꾼이 몰리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철길마을에서 <철길>과 <마을>을 찾아보기 힘들게 만드는 지경까진 가지 말았어야 했다. 붕어빵에 붕어가 안 들어 있는 거까지야 이해해 줄 수 있지만, 잉어빵 틀에 찍어내고선 어차피 붕어빵이나 맛은 거기서 거기라고 우겨대선 안 되는 거다.
철길마을 입구 게시판에 걸려있는 자료사진
태국의 유명 관광지 중 하나인 <위험한 시장>을 문득 떠올려본다. 좁은 철로 주변에서 장사를 하다가 열차가 들어오면 후다닥 판을 걷고 피하는 시장 상인들 모습이 경이롭고 신기하게 비쳐 일약 관광 명소가 된 곳이다. 그 위험한 시장에 기존 보따리 상인들을 몰아낸 뒤 군산 철길마을처럼 우후죽순 상점들이 들어선다면, 그로 인해 열차 진입마저 막혀버린다면 그래도 관광객들은 그곳을 찾을까?
군산 철길마을이 왜 유명해졌고, 왜 관광객들이 즐겨찾는 관광명소가 됐는가를 되돌아봐야 한다. 관광객들이 왜 굳이 다른 곳 놔두고 군산 철길마을을 찾는지 잘 생각해봐야 한다. 그동안의 유명세 덕분에 지금 당장이야 사람들이 몰리겠지만, <철길>도 <마을>도 찾아보기 힘든 철길마을이 얼마나 더 생명력을 갖게 될진 미지수다. 다른 무엇보다도 철길마을 한 번 보겠다고 멀리서 어려운 발걸음 해준 손님들에게 우후죽순 들어선 상점들만 보여주는 건 예의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