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난 내 귀를 의심했다. 50년 넘게 살아오면서 온갖 시베리안 허스키스런 도그 베이비들을 봐왔지만, 이게 과연 백주대낮에, 그것도 백주대로에서 사람 탈을 쓰고 할 수 있는 소리인가 싶어서다. 봄 기운을 즐기러 고창 선운사로 나들이를 갔던 길에 생긴 일이다.
봄기운에 취해 아내와 함께 선운사 돌담 따라 흐르는 도솔천을 지나 도솔암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맞은편에서 50대쯤 돼보이는 중년 여자 몇 명이 등산복 차림으로 걸어오고 있었는데, 뭐가 그리도 재밌는지 저희들끼리 낄낄깔깔 대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모처럼 마음 맞는 친구들과 함께 봄산행에 나선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들과 막 스쳐 지나가려는 찰나 "우리 시아버지 시엄마 올해 95살인데 아직도 살아있어. 너무 짜증낫!" 하는 문제의 발언이 들려왔다. 이어 "어머어머, 너무 힘들겠다" 어쩌구 하는 맞장구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유유상종이라고는 했지만, 그런 도그 껌 씹는 소리만도 못한 낯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 인간에다가 친구란 것들은 말리진 못할망정 맞장구라니, 욕지기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다.
마음 같아선 따끔하게 한 마디 해주고 싶었지만, 현실적으로 그냥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저희들끼리 떠든 말에 제3자가 끼어들어 왈가왈부하는 건 지나친 참견이 되기 쉬웠고, 말을 한다 한들 그걸 알아 들을 만한 준비가 전혀 안 돼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공연히 서로 얼굴만 붉힐 뿐 별무소득이 될 터였다.
씁쓸한 입맛을 다시며 내쳐 도솔암 가는 길을 걷다 보니 입맛이 더더욱 씁쓸해졌다. 그녀들 입장에서 봤을 땐 아내와 나란 존재가 영화나 연극 속 지나가는 행인1, 행인2 정도에 불과해 신경도 안 썼을 테지만, 왠지 우리가 무시 당하고 모욕 당한 느낌까지 들었다. 아무리 지나가는 행인1, 행인2라도 욕 들으면 기분은 안 좋다.
그 도그 껌 씹는 소리만도 못한 낯 부끄러운 말을 내뱉은 여자의 시아버지 시어머니라는 사람들은 어쩌면 아주 질 나쁘고 못된 사람들일 수도 있다. 어디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온갖 시집살이를 시키며 며느리를 비인간적으로 학대했을 지도 모른다. 예의 중년 여자 <말뽄새>로 봐서 그렇게 일방적으로 당할 거 같지는 않았지만, 설령, 천에 하나 만에 하나시아버지 시어머니가 막장이라 해도 그들의 잘못이 본인 허물을 덮는 면죄부가 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몸으로 지은 죄는 태산과 같사옵고, 입으로 지은 죄는 바다와 같사오며, 마음으로 지은 죄는 허공과도 같다'는 말이 있다. 굳이 죄를 지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살다 보면 죄 지을 일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그 중에서도 말로 짓는 죄가 정말 많은데, 굳이 모르는 사람 눈살까지 찌푸리게 만들 정도 도그 껌 씹는 소리를 일삼아 죄의 마일리지를 산처럼 높이 쌓진 말아야 한다. 마일리지는 언젠간 현금으로 되돌아오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