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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03. 2023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자전거가 내 가슴 속으로 들어왔다>는 <라떼> 어마무지하게 히트를 기록했던 카피 문구가 있다. 내 젊은 시절이었으니 대략 30년 전쯤 나온 건데, 카피 문구는 배우의 음성톤까지 선명하게 떠오르는 반면 무슨 제품 광고였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광고 속에 <그녀>라 지칭된 미모의 여배우와 <자전거> 한 대가 등장했던 기억 밖엔 없다. 광고 전문가들이 흔히 얘기하는 "광고는 성공했을지 몰라도 제품 홍보 측면에선 실패한 광고"다. 카피 문구 이미지가 너무 강해 오히려 제품을 가려버린 거다.

아무 것도 모르던 어린 시절(지금이라고 해서 뭘 좀 안다는 얘긴 아니다), '예쁘다'는 느낌과는 좀 거리가 있는 사람들이 패션모델이랍시고 런웨이를 누비는 걸 보며 이상하단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예쁜 모델을 쓰면 좀 더 사람들의 주목을 끌 수 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나중에 그 바닥 전문가들 얘길 들어 보니 "모델은 옷보다 <돋보여선> 안 된다"고 했다. 옷을 돋보이게 만드는 게 모델 역할인데, 모델 자신이 돋보이면 옷이 주목을 받지 못 한다는 거였다. 돋보이고 싶어하는 사람은 모델 하면 안 되겠구나 싶었다.


꽤 오래 전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에서 찍은 사진 한 장을 들춰보다가 나는 문득 <그녀의 자전거...> 광고와 <안 예쁜 모델> 사례를 떠올렸다. 비록 미모의 여배우 모델은 아니지만, 봄빛으로 곱게 물든 메타세콰이어길 속으로 달려가는 자전거와 사람이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인상 깊어서다. 이 사진을 찍은 얼마 후부터 해당 길이 관광지로 급속히 개발되면서 전반적인 모습이 많이 달라졌는데, 이를 보며 많이 아쉬워했던 기억이 있다. 여기 길에서의 메시지는 <한적한 담양 메타세콰이어길>인데, 그 개발 이후엔 <그녀의 자전거...> 광고 중 <그녀>와 <자전거>만 남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 뒤론 한적한 이 길을 달리는 시내버스라든가 자전거 탄 지역 주민 모습을 담을 수 없게 돼 아쉬움이 더 컸다. 대신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관광객들이 빼곡하게 그 자리를 채우면서 해당 길은 종전 이미지와는 좀 다른 느낌의 <메타세콰이어 나무가 좀 많은 이름난 관광지 중 하나> 로만 내 머리 속에 각인됐다. 그 관광지화로의 선택과 집중이 지역 경제에 얼마나 큰 보탬이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멋진 드라이브를 즐기러 계절 별로 한 번씩 그곳을 찾곤 하던 나 같은 사람들 발길은 끊게 만들었으니 중장기적으로 어떤 게 더 이득이 될 지 모르겠다.


50년, 100년씩 된 나무들 같은 유서 깊은 자연 환경들이 근시안적인 시각을 가진 몇몇 사람들에 의해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훼손 당하는 일이 너무 많다. <그녀의 자전거...> 광고에 비춰봤을 때 그 개발이라는 행위가 핵심을 찌르는 <메시지>인지, 혹은 <그녀> 혹은 <자전거>에 해당되는 것들인지 그 자연 환경들이 만들어지기까지 소요됐던 유서 깊은 시간들의 반의 반만큼이라도 좀 고민한 뒤 정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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