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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May 09. 2023

아버지 사랑은 공짜, 유산은 안 공짜

비인부전 비기자부전이라



12억이나 되는 많은 유산을 물려받았지만 끝내 울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던 아들이 있었다. 대(大)시민과는 거리가 먼 나같은 소시민이야 12억 유산이면 어깨춤이라도 췄겠지만, 불행히도 그는 1,560억원이나 되는 천문학적 재산을 가진 대부호의 아들이었다. 그 100분지 1도 안 되는 유산을 물려받았으니 만족 못할 수밖에. 더더군다나 1500억 넘는 남은 유산은 기르던 개에게 몽땅 상속됐으니 더더욱 불만이었을 거다.


도그 베이비에게조차 밀린 그는 결국 분을 참지 못해 소송을 제기했다. 그래도 자기가 아들인데, 어떻게 아들인 자신보다 도그 베이비에게 100배 이상 많은 유산을 물려줄 수 있느냐는 분노를 담아서다. 사람도 아닌 개에게 유산을 상속하는 건 법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돌아가시기 전 노인네가 분명 제 정신이 아니었을 거라느니 온갖 논리를 다 동원했을 거였다.


하지만 막상 재판이 열리자 판사는 일체 동요하는 빛 없이 그 아들에게 물었다. "당신은 1년에 몇 번이나 아버지를 찾아 뵈었는가?", "돌아가시기 전 아버지가 즐겨 드신 음식이 뭔지 아는가?", "전화는 얼마 만에 한 번씩 했는가?" 등등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아들이 그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답하지 못하자 판사는 다시 물었다. "아버지 생신이 언제인지는 아는가?"


말문을 잃게 만드는 잇따른 질문들에 끝내 아들이 할 말을 잃고 앉았을 때, 판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남긴 거라며 비디오 한 편을 틀어줬다. 그 비디오에서 아버지는 미욱한 아들 녀석이 유산에 불만을 제기할 경우에 대비해 남긴다며 준엄한 육성으로 "내 재산 1,560억을 사랑하는 개에게 물려주고, 아들에겐 12억만 유산으로 물려주되 아들이 불만을 제기할 경우 12억 상속도 취소하고 단돈 1,200원만 물려주기로 한다"고 유언을 남겼다.​


적법한 절차와 효력을 동반한 아버지의 마지막 유언에 따라 판사는 유산상속 순위에서 도그 베이비한테조차 밀린 불효막심한 아들에게 단돈 1,200원만 상속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하나뿐인 핏줄이니 당연히 아버지의 유산을 모두 상속받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아들은 다시 한번 하늘이 무너지는 큰 좌절감을 곱씹을 수밖에 없었다.


이 소설 같은 얘기를 접하며 나는 소설 <동의보감>의 한 장면을 떠올렸다. 허준의 스승으로 등장했던 명의 유의태가 자신의 평생공부를 아들이 아닌 제자에게 남기며 "비인부전(非人不傳)"이라 말하는 대목이 그것이다. 중국에서 서성(書聖)으로 불리웠던 왕희지가 <비인부전(非人不傳)이요 비기자부전(非器者不傳)>이라 말한데서 유래된 것으로, 한마디로 요약하면 인간 덜 된 도그 베이비들에겐 함부로 뭘 전해선 안 된다는 뜻이다.​


평생에 걸쳐 힘들게 모은 재산 1,560억을 기르던 개에게 남기고 떠난 아버지도 삶의 마지막 순간 이 비인부전 류의 교훈을 머리에 떠올렸을 거였다. 인간 덜 된 놈에게 전 재산을 남겨줘봐야 정신 못 차리고 허랑방탕한 삶을 살게 뻔하니 마지막 가는 길에 자식놈에게 정신 번쩍 들도록 큰 교훈이나 하나 남겨주고 가자 결심했을 거다. 하나뿐인 자식이라는 미련 때문에 전 재산을 물려줬다간 자칫 그게 독이 돼 그나마 미욱한 놈을 더더욱 그릇되게 만들 거란 우려가 있었을 테니까.


도그 베이비에게조차 밀린 자식놈이 아버지가 남긴 교훈을 잘 소화했는지, 그마저 국 말아 꼭꼭 씹어 드셨는진 잘 모르겠다. 굳이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이 얘기를 접하며 나는 <아버지의 사랑은 공짜지만, 유산까지 공짜여선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아버지에게 사랑만 받는 걸로 만족한다면 몰라도, <유산> 같은 기타수입까지 챙기기를 원한다면 자식놈들이 효도 비스무리한 것 흉내라도 좀 내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든 거다. ​


물론 부모씩이나 돼가지고 자식놈에게 유산 갖고 유세 떠는 건 좀 <남 우새스러운>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역시 내 자식놈을 잘 키우기 위한, 은혜를 입었으면 최소한 갚음을 생각하는 도리 정도는 아는 사람으로 만들기 위한 아버지식 사랑법이라면 체면 따위가 뭐 중요하겠는가. 남들 이목보다야 내 자식놈이 장차 살아갈 깃털처럼 많은 남은 날들이 백배천배는 더 중요한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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