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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짓는 사진장이 Jul 02. 2023

"아부지가 내일도 하느님 멱살 잡아주셨음 좋겠다"



"아부지가 내일도 하느님 멱살 한 번 잡아주셨음 좋겠네요 ㅎ"

아버지 기일을 하루 앞둔 저녁, 성묘 갈 준비를 하던 아내가 뜬금없이 내던진 말이다. 전날 올린 <너네 아버지가 그새 하느님 멱살이라도 잡은 모양이다> 제목의 내 포스팅을 보고 한 얘기다.



며칠째 이어지고 있는 지루한 장마 때문이었다. 간헐적으로 집중호우까지 더해지고 있어 6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던 그날과 엇비슷한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었다. 장례식보다야 훨씬 많이 가벼운 발걸음이긴 했지만, 비가 많이 내리면 아무래도 제대로 성묘 하는 게 쉽진 않을 터였다.


그래서 아내는 장난 삼아 "아버지가 하느님 멱살 한 번 더 잡아주셨음 좋겠다"는 말을 던졌을 거다. 그때 그 장례식 날처럼 아버지가 하느님 멱살 한 번 더 잡아서 잠시 비 좀 안 오게 해주면 좋겠단 마음이리라. 그래서 기왕이면 산소 앞 잔디밭에 돗자리도 좀 펴고, 절을 올리건 음복을 하건 여유로운 시간을 잠시 즐기다가 돌아오고 싶은 마음이었을 거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긴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선 마음과는 달리 "안 됩니다. 자꾸 멱살 잡아 버릇하면 하느님한테 찍힙니다!"라는 단호박 대답이 튀어 나왔다. 당신 장례식 때 고생하는 자식놈들 위해 한 번 정도 멱살 잡는 거야 하느님도 봐주실 수 있을 거지만, 두 번 세 번 반복되면 <관심사병> 같은 걸로 낙인 찍혀 아버지의 그쪽 세상 살이가 힘들어질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 거다.



그런 생각으로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가 잠들어 계신 대전현충원을 찾았는데, 며칠째 계속되던 지루한 장마가 씻은듯 자취를 감춘 채 파란 하늘이 우리를 반겼다. '살아 계실 때 말끝마다 <예쁜 며느리>라며 아내를 그토록 귀애하시더니만, 설마 하늘나라에서도 예쁜 며느리 챙기시느라 또 하느님 멱살을 잡은 건 아니시겠지?' 하는 싱거운 생각이 언뜻 들었다.


산소에 절을 올리며 그래서 나는 마음 속으로 아버지에게 신신당부를 드렸다.

'아부지! 6.25전쟁 때 나라 구하시느라 애쓴 공로는 장례식날 하느님 멱살 한 번 잡은 거하고 퉁친 겁니다. 자꾸 하느님 멱살 잡고 그러심 절대 안 됩니다. 살아 생전 힘들게 사셨는데 하늘나라에선 쫌 평안하게 잘 사셔야지요. 미욱한 자식놈들 걱정일랑 이젠 제발 그만 하시구 하느님과 사이좋게 잘 지내세요.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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